전교조 등 “여론 눈치에 자사고 봐주기” 반발
안산 동산고ㆍ군산 중앙고엔 지정 취소 동의
전북 전주의 상산고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위를 유지한다. 교육부가 앞선 전북교육청의 지정취소 처분 결정을 뒤집고 상산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기준점 미달(80점 만점에 79.61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회통합전형 반영 과정이 ‘위법’했다는 게 교육부 판단이다. 상산고는 즉각 환영의 뜻을, 전북교육청은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교육부 결정을 두고 ‘자사고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앞세웠던 정부가 반발 여론에 떠밀려 한 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여권 내에서조차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 탈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악화될 여론을 의식한 결정이란 것이다. 진보 교육단체들도 “교육부 부동의 결정은 공교육 정상화 포기 선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교육부는 26일 전날 열린 ‘특수목적고 등 지정위원회’가 상산고 지정취소 절차 및 평가지표 적정성 등을 심의한 결과 전북교육청의 지정취소 동의 요청에 대해 ‘부동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상산고와 함께 지정위원회가 심의한 경기 안산동산고와 군산중앙고(자발적 전환 신청)에 대해선 해당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 요청에 동의했다. 이에 두 학교는 2020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 “사회통합전형 반영, 위법했다”
교육부는 전북교육청이 재지정 평가 때 상산고의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을 반영한 것이 현행 법령에 어긋난다고 봤다. 구 자립형자사고인 상산고는 입학정원의 20% 이상을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사회통합전형 대상자로 선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91조3항) 적용 대상이 아닌데도 교육청이 이를 정량지표로 평가해 반영했다는 것이다. 앞서 상산고는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항목(4.0점 만점)에서만 2.40점이 감점됐다. 불과 0.39점이 모자라 재지정 문턱을 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결정적인 탈락요인으로 꼽힌다. 교육부는 이를 “재량권의 일탈 또는 남용에 해당돼 위법하다”고 판단했는데 사실상 상산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교육부가 구 자립형 사립고도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장한 2013년, 전북교육청이 이를 ‘일반고만 해당’이란 문구를 명시해 상산고에 전달한 점, 교육청이 상산고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3%)을 ‘고입전형 기본계획(2-15~2019학년도)’에 반영해 왔던 점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법무법인 2곳 등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모두 위법의 여지가 있다는 답변이 왔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전북교육청만의 유독 높은 평가기준(80점ㆍ타 시도교육청은 70점)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 차관은 “법무법인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던 건 사실이나 기준점 상향은 교육감 재량의 범위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필귀정”vs “공교육 포기 선언”
상산고는 이날 교육부 발표에 즉각 입장문을 내고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평가가 형평성, 공정성, 적법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당연한 결과이자 사필귀정”이라며 환영했다. 상산고 학부모회도 “대한민국의 정의는 살아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도 “교육감의 평가권한이라 해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교육부 결정을 반겼다.
하지만 정부가 악화된 여론 눈치를 보느라 ‘원조 자사고’격인 상산고의 지위를 유지시켰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가 ‘자사고 폐지’를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로까지 내세웠지만 일부 여당 의원들마저도 상산고 재지정 취소에 반기를 들자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부동의’란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전북교육청 측도 “퇴행적 결정”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까지 써가며 반발했다.
진보교육단체들도 일제히 반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날 성명을 내고 “상산고는 공고하게 서열화된 고교체제의 상징이자 실패한 자사고 정책의 정점에 있었다”며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은 시효가 끝난 자사고 정책을 연장하고 고교서열화 체제를 공고화하겠다는 선언”이라고 꼬집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정권마다 반복되는 ‘자사고 봐주기’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 차관은 “교육부나 교육청 모두 문재인 정부가 진행해오고 있는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란 기본적인 기조는 그 뜻을 같이 한다”면서 “다만 재지정 평가 절차는 공정하고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방침”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서울 지역 자사고 8곳과 부산 해운대고에 대한 지정취소 여부를 내달 1일 심의하기로 했다. 교육부 장관의 최종 결정은 이르면 2일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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