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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를 믿어도 될 것 같아서

입력
2019.07.27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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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영상 캡처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영상 캡처

우리는 우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TV 예능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별거 아닌 거리 풍경이, 다소 심심하다 싶은 고궁의 건축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 외국인들은 ‘원더풀!’을 외치며 호들갑을 떨까? 혹시 카메라 앞에서 연출된 액션은 아닐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6년 전, 서울에 온 한 무리의 미국인 가족을 만났다. 40여년 전 사촌언니가 그곳 남자와 혼인함으로써 만들어진 친ㆍ인척관계였다. 사촌언니는 그저 오랜만에 서울을 찾은 감회에 푹 젖은 듯했다. 반면 아랫세대 젊은이들, 그러니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언니의 딸과 백인 사위들은 전혀 달랐다. 애초 일본 여행에 나흘간의 서울 방문을 끼워 넣었다는 그들은 1분 1초가 아까운 듯 움직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일던 시기였다.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그들은 나조차 처음 들어본 서울의 핫플레이스를 쏙쏙 뽑아냈고, 가이드 없이 스마트폰에 의지해 자기들이 보고 싶은 곳을 잘도 누볐다. 북촌 한옥마을과 광장시장, 홍대입구, 동대문 닭칼국숫집, 전쟁기념관, 도라산역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 나흘 동안 두 차례, 젊은이들과 식사를 했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거침없이 무리를 이끌던 백인 청년에게 여행 소감을 물었다. 그는 사흘 동안 서울을 누빈 경험을 ‘놀라움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풍경과 음식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곳곳에서 만난 한국의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하다는 점에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질서정연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이 매력적인 도시’가 서양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게 너무너무 안타깝다고도 했다. “조금만 더 치밀하게 여행 계획을 짰더라면, 처음부터 행선지를 한국으로 잡아 부여와 경주에도 가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그들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듯했다. 머잖아 꼭 다시 서울에 올 거라고 말하던 이 젊은이들은 그 사이 두 차례 더 한국을 방문해 그때 못 본 우리의 지방 도시들까지 훑고 갔다.

아마도 적잖은 사람들이 비슷한 에피소드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회사 업무를 통해 연결된 외국 사람들로부터 유사한 러브콜이 들어온다. 유명한 작가들, 저작물로 인연을 맺은 학자와 그 비서들…공식적인 출판 업무는 양쪽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을 취하면 될 일이다.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면 굳이 출판사 편집자의 연락처를 캐물어 직접 연결할 일은 없는 그들이 살가운 안부 편지를 보내온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한국과 한국문화의 매력에 아낌없는 호의를 표한다. 머지않은 날에 서울에서 만나기를 바란다는 그들의 편지는 나를 설레게 한다.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우리의 힘이랄까, 대중문화가 이끌어낸 한류의 위상을 실감하며 뿌듯해지는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이 흐름을 우리보다 먼저 이웃나라 위정자가 간파했으리라고 나는 여겼다. ‘이러다가 아시아의 문화주도권마저 빼앗기면 어쩌지?’ 두려움과 조급증이 그로 하여금 패악에 가까운 무리수를 두게 만든 건 아닐까. 한쪽에선 날 선 훈계가 쏟아진다. 순진한 호기는 금물이라고, 이건 나라 경제가 결딴나느냐 마느냐의 중대사라고 말이다. 안다. 다행히 요 며칠, 나는 기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여럿 만났다. “우리야 뭐, 우리 분야만 아니까…” 겸손하고 조심스러웠지만, 그들은 의연했다. 그러잖아도 낡은 기업생태계를 재정비할 계기가 절실하던 참이라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그리고 이런 말이 덧붙었다. “당장 몇몇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금 이 사태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음이 머잖아 밝혀질 거라고 봐요.” 확신에 찬 단단한 목소리. 달리 고마움을 표할 길 없어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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