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18일 기준금리를 1.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금리인하는 향후에도 이어져 예금금리는 1%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이다. 금리가 1%이면 원금이 두 배 되는 데 70년이나 걸린다. 금융자산 구성이 주로 예금인 가계로서는 무수익에 가까운 자산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저금리 탈출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향후 고령화가 심화되고 1%대 경제 성장률에 접어들면 저금리는 기조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저성장 고령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금융자산이 많이 쌓인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자산은 5,500조원에 이른다. 자칫하면 이들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이 무수익자산이 될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돈이 집단으로 늙어가고 있다.
금융자산의 수익성이 낮으면 두 가지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 가계의 노후 대비가 어려워진다. 수명이 길어져 생애 지출액이 많아지는데 돈의 수익성 하락으로 자산의 수명은 짧아지기 때문이다. 가계 노후 대비에 거대한 불일치(mismatch)가 발생한다. 금융자산의 사회적 부가가치도 줄어든다. 예를 들어, 3,000조원 자산 수익률을 1%포인트 올리면 매년 30조원이 생긴다. 이는 연 3,000만원 소득 근로자 100만명분에 해당한다. 이 기회를 버리는 셈이다.
사회의 고령화와 금융자산의 안정성 추구 경향은 국가마다 다르다. 일본은 장기 저성장 기간에 가계자산이 주로 연금과 예금에 머물렀다. 투자자산으로 탈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대만의 가계자산도 해외채권 정도에 머무른다. 하지만, 영미권 국가는 사회가 늙어가도 돈은 투자를 통해 젊게 만든다. 퇴직연금의 주식 비중이 60% 수준에 이른다. 인구 500만인 노르웨이는 1,200조원에 이르는 국부펀드(석유기금)의 66%를 해외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70여개국 9,000개 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P. Drucker)는 1976년에 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The Unseen Revolution)’이란 책에서 연금으로 돈이 모두 몰리는 연금사회가 되면 돈이 늙어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연금을 운용하는 기관들은 수탁자의무 때문에 돈을 보수적으로 운용하게 되므로, 상장된 대기업들 위주로 투자하고 모험자본은 꺼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금 자산의 10% 정도를 의무적으로 모험자본에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금융자산 중 벤처캐피털 자산은 0.4% 정도에 불과하다. 벤처캐피털은 고사하고 상장된 기업 투자도 하지 않는다. 퇴직연금 적립금 200조원 중 원리금보장상품의 비중이 87%에 이르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의 돈은 사람과 함께 급속하게 늙어가고 있다. 이처럼 돈이 기업에 투자되지 않고 부동산으로 배분되면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게 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석유 수익자금으로 세계의 기업들에 투자하는 이유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다. 석유 가격 하락과 자원 고갈, 그리고 무엇보다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금의 목적에 명시되어 있다. 현 세대만이 아닌 다음 세대를 아우른 전체 세대의 후생을 생각하여 돈을 젊게 만든 것이다. 이들의 장기적인 관점과 세대통합적 사고는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고령사회에서 베이비부머들이 축적한 금융자산이 낳는 부가가치를 2차 인구배당금이라 부른다. 1차 배당금은 베이비부머가 젊은 시절 산업활동에서 생산한 부가가치다. 고령사회에서는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1차 인구배당금이 줄어드는 만큼 2차 배당금을 높여서 대응해야 한다. 고령사회의 축적된 금융자산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는 투자를 통해 가능하다.
저금리는 이제 기조로 자리 잡았다. 가계의 평안한 노후와 고령사회의 저성장 탈피를 위해서는 돈을 젊게 만들어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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