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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전염은 극단적인 선택만이 아니다, 용기도 치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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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전염은 극단적인 선택만이 아니다, 용기도 치유도…

입력
2019.07.26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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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명문고등학교에서 6년 간 아홉 건의 연쇄자살이 일어났다. 성공신화로 가득한 공동체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더 강력하게 전염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명문고등학교에서 6년 간 아홉 건의 연쇄자살이 일어났다. 성공신화로 가득한 공동체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더 강력하게 전염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도시 팰로앨토가 들썩였다. 첨단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학생이 기차가 달리는 철로에 뛰어들어 사망한 것이다. 게다가 이 학생은 명문학교로 꼽히는 건 고등학교 재학생이었다. 건고등학교는 대입 모의고사인 PSAT 시험 고득점자가 많기로 전국 10% 안에 들었고, 대학과목 선이수시험에 응시한 학생 중 90% 이상이 고득점자였다. 충격도 잠시,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졸업을 앞둔 건고등학교 학생이 같은 자리에서 죽었다. 이제는 충격이 가실 틈이 없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이 학교 학생 다섯 명이 선로에 뛰어들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탄탄대로를 걸을 거라는 기대를 받았던 명석한 아이들이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까. 이들 사이에 전염병이라도 도는 걸까. 리 대니얼 크라비츠는 팰로앨토로 이사한 지 일주일 만에 첫 자살 사건을 목격했다. 과학전문 작가로 활동한 크라비츠는 연쇄자살의 실마리를 풀어 보기로 결심했다.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는 그가 2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 시카고에 이르기까지 사회전염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만나며 해답을 찾아 온 체험기다. 수많은 심리학 용어가 등장함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살려 적은 덕에 소설과 같은 몰입도가 있다.

일찍이 리처드 도킨스는 ‘밈’에 대해 언급했다. 바이러스가 숙주에 기생하는 것처럼 문화가 전달되는 데도 중간 숙주가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문화적 유형, 요소 등을 밈이라 불렀다. 환경이 적합하다면 자연상태의 바이러스처럼, 생각 역시 전파되고 타인에게 번식한다는 것이다. 주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생각뿐이 아니다. 행동과 감정도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염된다.

건고등학교.
건고등학교.


문제는 성공신화와 밝은 미래가 도처에 퍼져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왜 자살이라는 사회전염이 나타났느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더 오래 일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 더 높은 곳에 이른다”는 실리콘밸리의 좌우명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위험성을 지적한다. “기준을 지나치게 높이고 성취의 의미를 왜곡하고 슈퍼맨 사상을 강제로 주입할 경우 우리의 잠재력은 완전히 박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전교생이 훌륭한 학생들일지라도 모두가 1등을 나눠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닐 생각을 하며, 이력서에 스펙을 빼곡히 기록하다 보면 학생들은 ‘성공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두려움은 강력한 전염성을 지닌 감정으로, 그 누구도 면역력을 갖지 못했다.

사회전염은 자살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친다. 일찍이 방송 드라마와 광고를 통해 섭식장애를 포함한 외모 강박이 사람들에게 전염된 것이 그 예다. 수많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둘러싸인 요즘은 타인에 의한 영향력이 더 커졌다. 실제로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 긍정적인 표현을 줄이면 사용자들 스스로 부정적인 글을 더 많이 썼고, 반대로 긍정적인 표현에 더 많이 노출되면 사용자들의 긍정적인 포스팅이 증가했다고 한다. 어떤 촉매제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온전히 나 자신에 의한 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팰로앨토의 연쇄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온 저자가 6년 만에 내린 결론은 “안타깝지만 전염병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4년 10월부터 4명의 학생이 또다시 자살하는 두 번째 연쇄자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저자의 질문은 “전염이 실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로 달라졌다.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가 제안하는 답이다.

택시운전사부터 바리스타까지 모두가 사회전염의 징후를 감시(개리 슬럿킨)하고, 자신이 주변사람 들의 기분과 행동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아야 한다(피터 골비처)는 등 저자가 만난 학자들의 해법이 하나같이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희망은 부정적인 감정이 전파되는 것만큼 용기와 치유 역시 사회적으로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 

 리 대니얼 크라비츠 지음ㆍ조영학 옮김 

 동아시아 발행ㆍ280쪽ㆍ1만6,000원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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