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제작을 쉬면서 시청자로 돌아가 보니, 한 자리에 앉아 프로그램을 1시간 이상 집중해서 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더군요. 시청자들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금 느끼게 됐습니다.”
MBC ‘무한도전’으로 방송사에 한 획을 그은 김태호 PD가 새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로 돌아온다. 13년간 장수하며 ‘국민 예능’으로 군림한 ‘무한도전’을 지난해 3월 마무리한 김 PD는 1년여 준비를 거쳐 방송인 유재석과 다시 손잡았다. 유튜브에 사전 공개한 방송을 20일에 프리뷰로 내보냈고, 27일 정규 방송을 시작한다.
25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PD는 “올해 초부터 후배 PD들과 오랜 시간 아이템 회의를 하면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토요일 저녁 ‘놀면 뭐하니?’와 일요일 저녁 ‘같이 펀딩’으로 인사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정해진 포맷 없는 게 포맷이었던 ‘무한도전’처럼 ‘놀면 뭐하니?’도 무형식의 형식을 실험한다. 휴대용 카메라를 유재석에게 맡긴 뒤 여러 사람들이 주제 제한 없이 자유롭게 촬영하는 ‘릴레이 카메라’를 토대로, 그 영상을 개그맨 조세호의 집에서 여럿이 함께 보면서 즉각적인 반응을 담는 ‘조의 아파트’, 카메라가 교통망을 타고 전국을 누비는 ‘대한민국 라이브’ 등으로 구성된다. 현재 6회 방송까지 제작을 마쳤고 전체 12회 분량으로 기획됐다. 이와 동시에 다음달 18일 첫 방영을 앞둔 ‘같이 펀딩’은 크라우드 펀딩을 시청자 참여 예능으로 풀어낸 프로그램이다. 김 PD는 두 프로그램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다.

신규 프로그램들은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있는 TV라는 틀을 벗어나 유튜브와 포털사이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다양한 플랫폼을 적극 활용한다. 시청 패턴 변화에 발맞추려는 노력이다. TV 방송 이후 하이라이트 장면들은 포털사이트로 공개하고, 편집된 장면이나 현장 반응은 별도로 모아서 유튜브로 공개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무한도전’을 함께 이끈 유재석은 이번에도 중추 역할을 한다. 릴레이 카메라가 누구 손에 들어갈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출발점은 늘 유재석이다. ‘놀면 뭐하니?’라는 제목도 유재석이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놀면 뭐하니?”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에서 따 왔다. 김 PD는 “‘무한도전’은 6, 7명 고정 출연자가 있고 그들에게 맞는 아이템을 찾았다면, ‘놀면 뭐하니?’는 반대로 아이템에 맞춰 그에 필요한 인원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김 PD는 ‘놀면 뭐하니?’의 장르를 ‘캐릭터 버라이어티’라고 정의했다. 다채로운 인간 관계와 개인의 개성이 카메라에 담길 뿐 아니라 캐릭터간 색다른 조합을 시도할 여지도 많다는 설명이다. 이런 확장성을 토대로 ‘놀면 뭐하니?’에서 뻗어 나온 아이템을 개별 프로그램으로 독립, 발전시키는 구상도 하고 있다. ‘놀면 뭐하니?’ 자체가 콘텐츠 플랫폼이자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김 PD는 “무한도전이 허브가 돼 스핀오프를 제작하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지 못해 늘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 PD는 ‘무한도전’을 브랜드로 키웠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브랜드가 됐다. 예능 분야에서 연출자 이름으로 독자적 세계를 인정받고 팬덤을 양산한 첫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영석, 신원호 등 여러 지상파 PD들이 케이블 채널로 이적했지만, 김 PD는 MBC에 남아 ‘무한도전’을 지켰다. 이 때문에 ‘놀면 뭐하니?’는 ‘지상파 예능의 반격’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더욱더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김 PD는 “‘꿈이 MBC 사장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가볍게 농담을 던지며 “PD 일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에둘러 얘기했다. 그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스튜디오형 제작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프로그램 기획과 초기 설정은 김 PD도 함께하지만, 프로그램이 안정화된 뒤에는 후배 PD들이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가는 형태다. 김 PD는 “방송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닌데 혼자 주목받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며 “앞으로는 MBC 예능과 관련돼 떠오르는 PD 얼굴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무한도전’ 시즌2를 기다리는 팬들도 여전히 많다. 지난 3월 31일에 종방 1주년 기념으로 온라인 라이브 방송도 했다. 한때 ‘토요일 토요일은 무한도전이다’라는 제목으로 시즌2 준비를 하기도 했다. 김 PD는 “나도 ‘무한도전’을 하고 싶고 MBC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멤버들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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