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도가 넘는 날씨에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면 아스팔트의 열기를 그대로 흡수해 숨이 막혀요.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청바지를 벗으려 하면 땀에 젖어 잘 벗겨지지 않죠. 정부의 폭염 대책 가이드라인에서는 물을 많이 마시고 1시간에 10~15분씩 휴식을 취하라는데, 배달하는 도중에 화장실도 갈 수 없고 최저임금보다 돈을 더 벌려면 휴식을 취할 수도 없습니다.”
배달 서비스 산업에서 일하는 오토바이 배달원(라이더)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폭염ㆍ폭우 대비한 배달 근로자 안전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말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실외에서 일하는 배달원들의 건강권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는게 이 단체의 문제의식이다. 실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지난 22일 각 지역에서 배달 도중 체감온도를 측정한 결과 최고 40.2도(충남)에 이르렀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폭염 대비 노동자 안전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한다. 고용부는 각 사업장에 △규칙적으로 물 마시기 △충분한 공간의 그늘 제공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시간당 10~15분씩 휴식 △근로자가 건강상 이유로 작업 중지를 요청할 경우 즉시 조치 등을 권고했는데, 배달원은 날씨가 덥거나 폭우가 내릴수록 주문이 쏟아지기 때문에 업무환경 특성상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라이더들은 배달 대행업체와 같은 플랫폼 회사 소속으로, 배달 앱 등을 통해 일감을 얻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다. 이 같은 고용형태가 폭염과 같은 악조건에서도 건강권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요인이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은 “고용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 사업장이 근로자를 온열질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플랫폼에 종속된 배달원들은 자기 스스로 배달 건수를 줄이는 등 근로조건을 통제해야만 건강도 지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라이더유니온은 현실적 대책으로 ‘안전배달료 도입’을 요구한다. 배달 1건당 라이더들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는 2,000~4,000원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플랫폼 회사들이 증가해 단가인하 경쟁이 계속돼 수수료가 줄어들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라이더들이 목숨을 걸고 배달을 해야 하는데 이 같은 환경을 바꾸자는 것이다. 지난해 라이더에게 폭염 수당으로 배달 1건당 100원의 ‘폭염수당’지급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던 박 위원장은 “낮은 배달단가가 무리한 배달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기업이나 소비자가) 적정 수준의 단가가 보장된 ‘안전배달료’를 지불해야 배달원들의 안전이 지켜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