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가. 다시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민중의 노래가.”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축구장에서 터져 나왔다. 24일(현지시간) 오후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인 맨체스터시티의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홍콩 킷치 FC와의 경기에서 홍콩 시민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주제가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합창하면서 홍콩 당국에 대한 비난의 움직임을 보였다.
경기 시작 전 경기장 밖에서는 가사가 인쇄된 유인물들이 입장하는 관객들을 상대로 배포됐다. 홍콩 스타디움을 채운 관중들은 경기 시작 후 21분쯤부터 주제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경기장 곳곳에도 송환법 철폐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린 상태였다. ‘홍콩은 경찰국가’, ‘홍콩을 구하자’ 등의 플래카드가 스탠드에 펼쳐졌고, 관중들은 합창 이후 “자유 홍콩” 등 구호를 외쳤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도했다.
홍콩 시민들이 축구장에서 이런 시위를 벌인 것은 21일 발생한 ‘백색테러’ 사건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21일 밤 홍콩 위안랑(元朗) 전철역에는 100여 명의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들이닥쳐 쇠몽둥이와 각목 등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자들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이로 인해 최소 45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된 바 있다.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은 경기에 앞서 “홍콩에서의 시위가 개인적 차원에서 내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인 과르디올라 감독은 카탈루냐 독립 운동을 지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탈루냐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는 의미를 담은 노란 리본을 착용한 모습이 포착된 적도 있었다.
한편, 27일 예정된 대규모 백색테러 규탄집회는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SCMP에 따르면 50인 이상의 시민이 참여하는 공공 집회에 대해 필요한 경찰의 승인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활발하게 참여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백색테러 사건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백색테러 가담자의 근거지로 여겨지는 남핀와이 마을을 파괴하자는 주장이 게재되면서 경찰이 충돌을 우려해 집회를 허가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주최 측은 경찰이 집회를 불허한다고 하더라도 백색테러 규탄 집회를 강행할 예정이어서 충돌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홍콩변호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최근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경찰의 시위대 진압 등 공권력 행사가 정당하게 이뤄졌는지 조사하는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홍콩 정부에 촉구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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