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게릭(Lou Gehrigᆞ1903~1941)은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4번 타자로 기억되지만 오늘날 그의 이름은 절정의 순간에 그를 덮친 불치병의 대명사로 더 유명하다. 근위축성 측색경화증(ALS)으로 불리는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돼 온몸이 굳어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질환이다.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사례에서 보듯 의식과 인지 기능은 또렷해도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다. 문제는 10만명당 1,2명꼴로 발생하는 희귀병인 탓에 지금껏 치료법은 물론 원인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희망은 더욱 절실하다.
□ 우리나라에서 ALS가 주목받은 것은 2002년 농구 선수 박승일이 이 병을 진단받고 2011년 그의 이름을 딴 ‘승일희망재단’이 출범하면서다. 3,000여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루게릭 환자 전용 요양병원을 짓기 위해 박승일의 투병을 지원하며 지금껏 모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4년 미국에서 시작돼 지구촌으로 확산된 ‘아이스버킷 챌리지’ 모금 이벤트는 루게릭병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일깨웠다.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동영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벤트다. 사진 작가 강희갑이 재단과 인연을 맺은 게 이 즈음이었다.
□ 강 작가가 ALS 환자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겠다며 17개 산악형 국립공원 일출 사진 촬영에 나선 앞뒤 얘기는 길다. 무엇보다 50대 나이에 회사도 그만두고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든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다. 하지만 그는 2016년부터 지인들과 매주 ‘희망 일출’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17대 명산을 찾아 올랐고, 그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다. ‘희망 일출 시즌4’인 올해 그는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한라에서 백두까지 릴레이 통일 희망 일출’을 기획해 한반도 얼마 전 남쪽 산행 일정을 끝내고 8월 초 백두산만 남겨뒀다.
□ 희망 일출 사진전의 수익금으로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돕겠다는 강 작가의 도전은 무모할지 모른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도전과 열정이 일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최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20년 ALS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61)가 신생 정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는 애기를 듣고서다. 박승일의 말처럼 ‘희망과 기적은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임을 입증한 그는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방식을 바꾸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후나고가 모든 이의 희망 일출이 됐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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