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한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가 죽음을 맞았다. 갑작스런 등장에 사람들이 기겁했지만 마치 산책하듯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 ‘친철한(friendly) 베솔(마을 이름) 청년’이라 불렸던 호랑이는 개가 주로 걸리는 병을 앓은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말레이반도 트렝가누주(州) 시골 마을 베솔과 주변 도로를 어슬렁거리던 호랑이 한 마리가 19일 붙잡힌 뒤 23일 숨졌다고 말레이시아 국립공원공단이 밝혔다. 이 호랑이가 마을과 도로를 배회하는 장면, 혼비백산 달아나는 사람들과 멀리서 호랑이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을 찍은 동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널리 퍼졌다.
베솔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마을에 출몰하자 당국에 신고했다. 다만 호랑이가 사람들을 해치려는 행동은 하지 않아 친절한 베솔 청년이라고 불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말레이시아 국립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이 19일 오후 3시 마을에서 500m 떨어진 숲에서 쉬고 있던 녀석에게 진정제가 들어있는 다트를 쏴 포획했다. 다섯 살짜리 호랑이는 몸무게가 130㎏으로 구조센터로 옮기기 위해 성인 8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5일 뒤 구조센터는 “집중적인 치료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베솔 청년이 23일 오전 5시30분쯤 사망했다”라며 “송곳니에서 DNA를 채취한 결과 사인은 개홍역이었다”고 발표했다. 디스템퍼(Canine Distemper)라 불리는 개홍역은 주로 개가 공기 감염에 의해 걸리는 급성 전염병으로 사람 홍역과는 연관성이 없으나 해당 바이러스가 유전적으로 비슷하고, 증상도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치료를 받더라도 90% 이상의 폐사율을 보이는 무서운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구조센터 관계자는 “20일부터 23일까지 호랑이를 관찰한 결과, 원을 그리며 걷거나 발작, 콧물 분비 등의 증상을 보였다”라며 “개홍역에 걸린 후 뇌에 이상이 생겨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등의 행동을 보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개홍역 바이러스가 주변의 다른 야생동물에게도 전파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호랑이를 한 마리 더 봤다는 증언에 따라 당국은 마을 주변에 호랑이 덫을 놓고 계속 감시하고 있다. 보호를 하지 않으면 2022년 아시아의 야생 호랑이가 멸종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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