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2.87% 인상한다는 결정 이후 여러 논란이 있지만 노사 진영이나 좌우 이념을 떠나 깊게 성찰해야 할 부분이 있다. 노조 측이 제기한 비판이긴 하지만 최저임금법 4조에 최저임금은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익위원들도 노사 양측의 안을 두고 투표해 사용자 측 안을 채택한 것이고, 결정 기준은 별도로 제시할 수 없다고 인정했으니 결정 과정과 법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노조가 주장하는 ‘시간당 1만원’ 주장도 법이 말하는 네 가지 결정 기준과 들어맞지 않는 것이고, 2018년 최저임금을 16.4%로 올릴 때도 별다른 결정 기준이 제시되지 못했으니 형편이 두루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 곳인가? 이미 국회에 최저임금위 개혁관련 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지만 위원회의 기능과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과 혁신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위는 1987년 출범 당시에는 최저임금심의위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2000년에 들어 ‘심의’라는 단어를 떼고 최저임금위로 변경되었다. 변경을 전후로 노사 간 첨예한 이견을 조정하는 협상이 중시되기 시작했다. IMF 경제위기를 거치며 완전고용이 끝나고 소득 양극화가 커지면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초기에 전문가 및 공익위원들이 주도하던 심의 위주의 기능이 위원회 명칭 변경 이후에 노사 간 또는 공익위원을 추천하는 정부까지 합쳐 노사정 간 교섭과 협상 기능으로 변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법이 제시하는 결정 과정은 여전히 심의 중심으로 남아 있다.
최저임금위는 임금 심의를 하는 곳인가 아니면 국가적 수준에서 노사정이 임금협상을 하는 곳인가? 대부분은 심의와 협상 기능이 혼합돼 있다고 편리하게 설명하지만 사실 하나의 위원회 구조에서 이 둘은 이율배반적 성격을 가진다. 협상은 대체로 정교하고 복잡한 심의를 건너뛰고 반대로 심의 기능을 중시한다면 전문가들 외에 노사 대표들은 결정 과정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가 원하는 법 개정 방안은 1차는 전문가 중심으로 객관적 지표들을 활용한 심의를 해서 인상구간을 정하고 다음 단계에선 노사 대표들이 참여해 제안된 구간 안에서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이원화 방안이다. 그런데 심의를 통해 제시된 구간이 예컨대 2.5%에서 3.5% 사이라고 협소하게 제시된다면 이후 노사 대표의 협상 역할은 축소된다. 만약 심의 구간을 2.5%에서 6.5% 사이라고 넓게 제시한다면 전문적인 심의 기능이 위축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결국 노사가 협상으로 결정하라고 위임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최저임금을 전문적 심의를 통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점진적으로 올릴 것인지 아니면 변화하는 경제사회 상황에 역동적으로 조응하기 위해 협상 기능을 중시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최저임금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선 객관적 지표들을 중심으로 심의를 강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최근 최저임금 갈등을 거치면서 대체적인 사회적 합의도 나타났다고 본다. 최저임금이 짊어진 소득분배 개선이란 무게를 분산시키고 중위소득 이하 임금계층에 대한 지원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근로장려세제(EITC) 혜택을 강화하고 저소득층 사회적 보호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것 외에 또 필요한 것은 노사 간에 전국적, 업종별로 임금격차 완화를 위한 적정 임금수준을 협상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사회적 대화기구나 산별교섭을 통해 풀어 가야 할 과제다. 최저임금위가 객관적 결정기준을 중심으로 심의하는 여건을 만들어 주려면 이런 제도적 보완 방안들이 필요하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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