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대출제도 혁신 나선 은행들
#. 아이스크림용 ‘콘 과자’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A사(자산 99억ㆍ매출 142억원)는 공장 증축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 최근 ‘지식재산권(IP) 담보 대출’을 출시한 하나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A사는 공장건물을 이미 담보로 잡혀 기존 대출 관행으론 추가 담보 여력이 없었지만, 하나은행과 외부 평가기관은 A사가 보유한 콘 과자 자동 포장 기술(슬리밍머신) 특허를 약 12억원 가치로 평가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A사 특허를 담보로 시설자금 10억원을 대출했다”며 “공장이 신축되면 매출도 늘면서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B사도 최근 운영자금 명목으로 국민은행에서 ‘동산(動産) 담보대출’을 받았다. 3년 전 케이블카 공사를 시작해 올해 본격 영업에 나선 B사는 초기 자금이 소진되면서 창업 후 4~7년 사이 위기를 겪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에 직면했다. 케이블카 등을 담보로 B사에 약 8억원을 지원한 국민은행은 “그간 케이블카 등 자체동력보유동산은 담보 인정이 제한됐었지만, 규정을 완화해 담보로 인정했다”며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원격 관리로 은행 담당자가 동산 현장을 계속 방문ㆍ점검해야 하는 불편함도 줄였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안정성을 명분으로 오랫동안 부동산 담보에 치우쳐 있던 기존 기업여신 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기술력이나 성장 잠재력 높은 기업을 키우려는 정부의 혁신금융 정책에 호응하는 차원이지만, 은행 입장에서도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ㆍ확대하는 효과가 적지 않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지난 3월 정부의 혁신금융 정책 발표 이후 IP담보대출 관련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이 기존 상품에 IP 담보대출도 포함시킨 ‘우리큐브론-X’를 지난 3월에 출시한 데 이어 신한은행은 가치평가 금액의 최대 60%까지 대출이 가능한 ‘신한 성공두드림 IP담보대출’을 4월 선보였다. 하나은행도 가치평가금액 범위 내에서 대출이 가능한 ‘KEB하나 IP 담보대출’ 4월 출시했다. NH농협은행은 IP 담보대출 전용상품을 이달 출시할 예정이다.
덕분에 지난 3월말 약 14억원에 불과했던 시중은행의 IP담보대출 잔액은 6월말 793억원으로 급증했다. 정책금융기관을 포함한 전체 IP담보대출잔액에서 시중은행이 차지하는 비중도 0.4%(3월말)에서 19.6%(6월말)까지 늘어났다.
기업이 보유한 기계ㆍ재고 등을 담보로 한 ‘일반 동산 담보대출’도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 기업ㆍ우리은행에 이어 올해 신한ㆍ국민은행 등이 동산관리 플랫폼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그간 훼손ㆍ분실을 우려해 동산담보 대출을 꺼렸지만, IoT 등 첨단 기술 단말기를 담보물인 기계에 부착해 담보물의 상태 변화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했다. 일반 동산 담보대출도 지난 1년간 5,951억원이 새로 공급되면서 6월말 대출잔액(6,613억원)이 1년 전 보다 약 3.2배 증가했다.
특히 기업은행은 지난해 5월 출시한 IoT 기반의 ‘스마트 동산담보대출’로만 올 6월말까지 4,141억원을 공급했고, 2014년 4월 출시한 IP사업화자금대출 잔액도 713억원(6월말 기준)에 이른다.
다만 시중은행이 이 같은 동산금융 활성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려면 “동산이나 IP의 정확한 담보 평가와 회수(매각) 시장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산담보 회수지원기구 설립 등을 약속했지만, 지연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원을 통해 매각하면 되는 부동산과 달리 동산은 담보물 평가ㆍ처분 시 유동성이 떨어지고, 그 결과 은행의 건전성이 무너질 수 있다”며 “제도 안착을 위해선 관련 여건을 조속히 마련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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