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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는 식단만 짠다고?” 끊임없는 잡무에 ‘허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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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는 식단만 짠다고?” 끊임없는 잡무에 ‘허우적’

입력
2019.07.27 04:40
수정
2019.07.27 11:1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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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급식관리에 위생ㆍ민원 처리… 무상 우유 대상자 선정도 도맡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점심 시간이지만, 학교 급식을 책임지는 영양교사들에게는 조마조마한 시간이다. 맛이 없다고 하면 어쩌나, 혹시 먹고 배탈 나는 아이는 없나. 배식으로 분주한 학교 급식실의 모습. 연합뉴스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점심 시간이지만, 학교 급식을 책임지는 영양교사들에게는 조마조마한 시간이다. 맛이 없다고 하면 어쩌나, 혹시 먹고 배탈 나는 아이는 없나. 배식으로 분주한 학교 급식실의 모습. 연합뉴스

전국학교영양사회 송주헌 회장은 “주변에서 학교는 방학이 있지 않느냐, 급식도 없는데 왜 출근하느냐고 하는데, 그 소리 들을 때면 그냥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영양교사 및 학교 영양사의 업무는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이다.

학교급식 책임자로서 급식예산 내에서 학생 연령에 따른 영양량을 맞춰 식단을 짜고, 좋은 식재료를 선택해 발주하고 제대로 들어왔는지 검수하는 급식관리는 기본. 여기에 급식실ㆍ조리원 위생관리, 위생교육, 학생 영양상담 및 식생활교육 및 알레르기 관리, 급식 시설ㆍ기기 관리, 급식관련 공문처리, 학생 및 학부모ㆍ교직원 민원처리 등을 맡는다. 송 회장은 “여름방학은 그 동안 밀렸던 서류 등을 처리하고 개학 준비하는 것으로도 부족하고, 겨울방학은 신학기 준비를 위해 1년 급식운영계획, 조리원ㆍ납품업체 위생안전교육계획을 짜서 운영위원회 개최하고 업체선정하고, 우유급식 준비와 업체 선정하고 3월달 한달 식단 짜서 입찰 준비하는 등의 업무를 처리하느라 분주하다”고 했다. 그는 “급식사고가 생기면 모든 책임은 이중ㆍ삼중으로 지고 징계처벌까지 감당해야 되고, 휴가나 여유는 누릴 생각조차 못하고 하루하루, 그리고 한 달을 너무 짧게 지내는 학교 영양사의 업무는 무게 그 자체”라고 전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신동준 기자/2019-07-2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신동준 기자/2019-07-26(한국일보)

늘 함께 일해야 하는 조리원 관리는 학교 영양교사나 영양사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대목이다. 2017년 투신 사망한 전북 김제의 학교 영양사 최인정(당시 27세ㆍ가명)씨는 “여사님들(조리원들) 소리에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힘들어했다. 19년차 학교 영양사 서모씨는 “올해 학교를 바꿨는데 조리원과 잘 맞지 않아서 힘들다”며 “업무 스트레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기존에 조리원이 해왔던 레시피와 영양사가 제시하는 레시피가 다른 경우, 조리원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그러느냐”고 작업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임의적으로 음식을 조리하기도 한다. 서씨는 “매일 아침 조회를 하고 메뉴를 설명하는 시간에 더 많이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 사례들을 들어보면 조리원이 업무지시를 이행하지 않거나, 조리원들간 불화 야기, 배식시간 학생 민원처리 미흡 등의 사안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언급하면 “그런 소리 듣기 싫다”고 대체인력을 구할 여유도 없이 사직서를 써서 제출하거나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다. 대체인력으로 일하는 조리원 중에는 “어느 학교는 쉬운 일만 시키고 일찍 퇴근하게 해줬다”고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나마 대체 조리원이 구해지면 다행이다. 대체 인력이 안 구해지면 영양사도 같이 투입돼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영양사들은 “완성된 급식만 드시고 가는 교직원 및 학생들은 이런저런 상황을 알 수도 없고 일일이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한숨만 나온다”고 전하고 있다.

물론 지난 6월 사망한 전북 전주 영양교사 박세진(26ㆍ가명)씨는 “여사님들은 괜찮다(좋으시다)”고 했으며, 조리원과의 불화가 아닌 학부모ㆍ학생들의 항의가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급식 현장 상황에 따라 스트레스의 원인도 다양하다. 전주의 영양교사 이모씨는 “학교에서도 같은 교과 교사끼리 어울리는 분위기가 있고, 비교과이다 보니 ‘밥해주는 사람’ 취급 받으면서 배제되는 것 같아 힘들 때가 있다”고 했다.

더구나 영양교사나 영양사가 하기에 부적합한 일까지 떠맡겨져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무상우유 대상자 선정 업무는 가정 형편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담임 교사 등이 더 잘 알 수 있는데도 ‘먹는 것’이라는 이유로 영양교사ㆍ영양사가 처리하도록 하는 학교도 많다. 영양사가 행정실에 부탁해서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특수반 학생 자료 등을 요구하고 담임 추천서를 받아 학생복지심사위원회를 개최해서 무상우유를 제공한다. 송 회장은 “동ㆍ면사무소에서 저소득층 교육비 신청을 받아서 지원해 줄 때 무상우유도 한꺼번에 파악해서 개별 지원해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영양교사나 학교 영양사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의 관리감독자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안법 적용범위 판단 지침을 통해 학교급식을 ‘음식점업’으로 분류, 내년부터 각 학교에서는 급식소 내 관리감독자를 선임해야 한다. 이에 각 교육청은 영양교사나 영양사를 관리감독자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일선의 반발이 크다. 관리감독자는 기계설비 안전점검과 보호구ㆍ방호장치 점검 및 착용 지도, 산업재해 보고 및 응급조치 등 7가지 산업안전보건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송 회장은 “기계가 오작동 하거나 멈추면 영양사가 감전 위험이나 가스 유출 위험 속에서 고치다가 안되면 업체에 연락하는 게 일상이다”며 “영양사도 보호받아야 될 근로자이고 산업안전관리 전문가가 아니며 전문 필요인력을 늘려서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충북지부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충북지부 등은 “도교육청은 현장 노동자에게 책임과 부담을 전가하기보다 학교장과 유치원장으로 관리감독자를 선임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송 회장은 “이상기온으로 매일 식중독의 위험과 과중한 업무와 민원에 시달리는 학교 영양사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 영양사의 자살소식을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인다”며 “1인이 감당하기에는 과중한 학교급식 책임과 업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용시험을 치러 채용된 영양교사와 달리, 교육청과의 계약에 따라 교육 공무직으로 채용된 영양사들은 거의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적인 처우를 받는다. 15년차 학교 영양사 정모씨는 “영양교사와 비교하면 해마다 임금 격차가 커진다”며 “초과 근무를 해도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다”고 말했다. 20년 정도 되면 영양교사 임금의 50~60% 가량 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의 영양교사는 5,200여명이었고 학교 영양사는 5,000명 정도였다. 일부는 사립학교 재단이 별도로 영양사를 채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율은 미미하다.

송 회장은 “학교영양사는 온전한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으로 신규자나 장기 경력자간의 구분 없이 모두 동일한 기본급을 적용 받고 근속연수에 따른 급여 차이가 거의 없어(근속 수당이 적음) 근무의욕 상실 및 사기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최소한 정규직 대비 적정수준의 임금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의 영양관리가 중요하고 먹거리가 중요하다고만 하지 말고 한끼의 식단과 그 뒤에 있는 학교 영양사들의 한숨 소리도 귀 기울여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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