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사고 피해자 신고 의무 사라져 이 일로 추방 안돼”
사고 수습되면 추방 가능성 여전…현장선 ”체류기간 늘려야”
13명의 사상자를 낸 강원 삼척시 가곡면 ‘석개재’ 승합차 전복사고 당시 부상에도 사고차량 내 다른 탑승자 구조에 나섰던 태국인 불법체류자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 삼척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7시33분께 고갯길 가드레일을 넘어 전복된 사고 차량엔 충남 홍성주민과 함께 새벽길을 떠난 태국인 근로자 9명이 탑승했다. 이 사고로 P(34)씨 등 2명이 목숨을 잃었고, 7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지난해 계절근로자 등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태국인 근로자 9명의 경우엔 모두 비자가 만료된 불법체류자로 드러났다. 이들은 체류기간이 지난 상황에서도 경제적인 이유로 홍성에 머물면서 전국 각지에 일을 다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특히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량에 끼여 괴로워하던 70대 할머니를 구해준 태국인 부부 등 3명은 불법체류자 신고에 따른 범칙금 부과와 추방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료도 받지 않고 현장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선 이들이 현재 당초 주거지였던 홍성에 머물고 있단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거취 문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태국인 근로자들의 피해자 수사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관련법에 의하면 일단 이번 사고로 다친 태국인 근로자들의 본국 추방 가능성은 낮다. 2013년 3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고 피해자 대한 경찰의 법무부 통보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라 해도 국내법에 따라 피해를 구제 받을 권리를 줘야 한다는 취지다. 법무부 집계 결과 6월말 현재 국내 불법체류자는 36만6,566명이다.
앞선 지난해 5월 경북 포항에선 고의 추돌사고를 당하고도 불법체류자란 이유로 오히려 협박을 당했던 중국인이 추방을 면한 사례가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태국 근로자들은 교통사고 피해자로 치료와 보험처리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조사를 진행하려는 것”이라며 “지역 다문화센터와 함께 불법체류자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군 또한 태국인 사고 피해자들에게 신고 없이 의료비 등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고령화와 일손이 부족한 농업 현장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외국인 근로자의 체류 조건도 현실에 맞게 재조정돼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최대 90일인 외국인 계절근로자 체류기간과 배정인원을 늘려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파종부터 수확까지 6개월은 기본이고 일손이 부족한 농업 현장에서 숙련된 근로자는 필수다. “농가당 최대 5명이 2~3개월 일하다 떠나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 제도로는 만성적인 농촌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게 농가의 볼멘소리다. 최근 한국이민학회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2,100명으로, 잠재 수요(2만2,000여명)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한윤수(70) 화성 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은 “내국인이 꺼려하는 농업과 축산업의 경우 영주권 부여자격인 5년 이내에서 계절근로자 체류기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삼척=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