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도깨비’ ‘주군의 태양’, 일본 만화 ‘우세모노 여관’ ‘xxx 홀릭’. 지금까지 ‘호텔 델루나’와의 유사성이 언급된 작품들 중 일부다.
‘호텔 델루나’가 첫 선을 보인 이후로 시청자들이 가장 크게 기시감을 토로한 작품들은 tvN ‘쓸쓸하고 찬란한 도깨비’(이하 ‘도깨비’)와 일본 만화 ‘우세모노 여관’이었다.
과거 사람들을 죽인 원죄 때문에 영생이라는 죗값을 치르는 주인공. 수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오던 주인공과 그의 오랜 운명의 굴레를 벗겨줄 운명적 상대의 등장. 큰 틀에서 보면 ‘도깨비’와 ‘호텔 델루나’는 주인공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아있다.
여관의 안내인인 남자와 여관의 여사장이 함께 ‘유실물 여관’을 운영하며 귀신들의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아주고, 원한도 풀어준다는 스토리의 일본 만화 ‘우세모노 여관’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더 크다. 여관의 주인공이 젊은 모습을 한 채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라는 점, 호텔 직원들이 모두 각자 슬픈 과거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 여관의 손님들은 사람이 아닌 죽은 이들이라는 점, 주인공은 유일한 인간으로서 호텔 직원들과 손님들을 볼 수 있다는 점 등은 ‘호텔 델루나’와 완벽히 분리시켜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다.
또 유사성이 언급됐던 일본 만화 ‘xxx 홀릭’에서는 ‘호텔 델루나’와 마찬가지로 괴팍하지만 아름답고, 알고 보면 슬픈 과거사를 가진 불로불사의 여주인공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반면 심약한 남자 주인공은 귀신을 보지 않기 위해 여주인공의 하수인이 되고, 이들은 나름의 케미를 맞춰가며 다양한 존재들과 맞서면서 고민을 안고 있는 다양한 손님들을 위한 가게를 운영해 나간다. 설정을 놓고 보면, ‘호텔 델루나’의 첫 방송 이후 시청자들이 ‘xxx 홀릭’과의 유사성을 지적한 것도 무리는 아닐 정도다.
이 외에도 ‘호텔 델루나’ 속에서 귀신들이 눈에 보이고, 이들의 괴기스러운 모습과 공격 등에 겁을 먹는 주인공 구찬성(여진구)의 모습은 과거 홍자매가 집필했던 ‘주군의 태양’ 속 태공실(공효진)을 떠오른다. 장만월(아이유)가 원죄로 인해 죽지 못하고 살아왔던 오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김수현)의 과거 회상신이 떠올랐다.
‘호텔 델루나’의 대본 집필을 맡은 작가는 홍자매다. 앞서 ‘쾌걸춘향’ ‘마이걸’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최고의 사랑’ ‘주군의 태양’ 등 굵직한 흥행작들을 배출하며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두 사람이다. 하지만 수 차례 자가복제, 표절 의혹 등에 휩싸이며 대중에게 비판을 받기도 한 이들이다. 공교롭게도 홍자매의 작품이 시작과 동시에 또 다시 수많은 작품들과의 유사성에 휩싸였으니, 세간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호텔 델루나’가 홍보를 위해 배포했던 보도자료에서 기자에게 의문으로 남았던 문구가 있었다. “ ‘호텔 델루나’의 귀신이 머물고 가는 호텔 이야기는 지난 2013년 홍작가들이 집필한 ‘주군의 태양’의 초기 기획안이었다. 이 이야기가 올해 세상에 나오게 됐다”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첫 방송을 앞두고 꽤 오랜 시간 다양한 보도자료가 배포된 가운데, 매번 마지막 문장은 “ ‘호텔 델루나’가 이미 2013년 기획안이 나왔던 작품”이라는 내용이 장식했다. ‘왜 굳이 기획안이 이미 오래 전 완성됐음을 계속 언급할까’에 대한 의문이 꽤 깊게 남은 채 ‘호텔 델루나’는 첫 방송을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들에게 “2013년 이미 ‘호텔 델루나’의 기획안이 나와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우세모노 여관’의 표절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로 해당 작품이 2016년 발표됐으며, ‘호텔 델루나’의 기획안은 이미 2013년에 나왔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렇게 친다면 ‘도깨비’ 역시 2016년 작품이다. 그나마 조금 더 의심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 건 2003년 연재를 시작했던 ‘xxx 홀릭’ 뿐이겠다.
그러나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초기 기획안은 제작 직전까지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다. 2013년에 기획안이 나왔다고 해서 모든 의혹을 피해갈 수 있는 면죄부가 될 순 없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불거졌던 각종 표절 의혹을 본인들이 인정하지 않았고, 해당 의혹들이 지금까지 법적으로 인정 된 적 없다는 것 역시 ‘이번에도 의혹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객관적인 대답은 될 수 없다.
‘스타작가’라는 타이틀 아래서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선보이는 만큼, 매번 불거지는 표절 및 유사성 의혹에 과거부터 이어져온 ‘편견과 낙인’ 탓만 하기보단 ‘누가 봐도 유사한’ 디테일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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