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제작사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샹치(上氣ㆍ기를 다룬다)’가 14억 중국 팬심을 뒤흔들고 있다.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행가도를 달려온 마블 최초로 동양인, 그것도 중국계의 영웅담을 그린 영화다. 따라서 두 손 들고 환호할 법도 하건만, 지켜보는 중국의 시선이 영 곱지 않다. 일부 팬들은 “중국인을 모욕하는 영화”라고 벌써부터 보이콧을 선언하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샹치는 암살자로 키워지다가 무술 고수로 변신해 악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다른 영웅 캐릭터와 달리 그 흔한 첨단 무기나 초능력 하나 없어 과거 이소룡(李小龍)을 연상시킨다. 이에 맞서는 악당이 만다린(滿大人)이다. 20세기 초 영국 작가 색스 로머의 소설에 등장하는 푸만추(傅滿洲)를 모티브로 삼았다. 서구 정복을 꿈꾸는 잔인하고 냉혹한 캐릭터다. 푸만추는 중국인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조장하며 이들을 차별하고 억압해야 한다는 ‘황화론(黃禍論)’을 부추기는 데 악용돼 왔다.
마블이 량차오웨이(粱朝偉ㆍ양조위)를 만다린에 캐스팅하면서 중국인의 정서를 들쑤셨다. 량차오웨이는 ‘화양연화’, ‘중경삼림’, ‘일대종사’, ‘무간도’, ‘적벽대전’ 등 중국인의 감성과 의식을 대변하는 다양한 영화에서 큰 인기를 얻어 중국 ‘국민 배우’로 통한다. 그가 하필이면 부정적 이미지의 만다린 역을 덥석 맡아 마치 제 살을 깎아 먹는 것으로 비치고 있으니 중국인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을 만도 하다.
이에 상당수 네티즌은 량차오웨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따져 묻고 있다. “미쳤다”, “용서할 수 없다”, “실망스럽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격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미국과 무역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중국 특유의 애국주의와 맞물려 증폭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마블의 제작발표회 동영상은 불과 이틀 만에 조회수가 5억건을 웃돌았다.
반면 이 같은 히스테리적 반응이 “과도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타임스는 23일 “2013년 ‘아이언맨 3’에 이미 가짜 만다린이 등장했다”면서 “이 캐릭터가 진정 중국을 모욕했다면 당국이 중국 내 영화상영을 금지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민은 “량차오웨이가 미국 시장 진출이 아니라 연기의 폭을 넓히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감쌌다.
어쨌든 캐스팅 발표만으로도 이처럼 주목을 끌면서 영화 흥행은 떼어 놓은 당상인 분위기다. 중국 영화시장은 할리우드를 본 따 ‘찰리우드(차이나+할리우드)’로 불릴 만큼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 탓이다. 지난 4월 선보인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수입을 보면 중국이 6억2,910만달러(약 7,409억원)로 영국 1억1,480만달러(약 1,352억원), 한국 1억520만달러(약 1,239억원)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이다. 샹치는 2021년 2월 개봉한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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