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화제작사 마블이 지난 20일 샌디애이고에서 신작 '샹치' 제작발표회를 하고 있다. 악당 '만다린'에 캐스팅된 중국 국민배우 량차오웨이의 얼굴이 화면에 떠 있다. 웨이보 캡처

미국 영화제작사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샹치(上氣ㆍ기를 다룬다)’가 14억 중국 팬심을 뒤흔들고 있다.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행가도를 달려온 마블 최초로 동양인, 그것도 중국계의 영웅담을 그린 영화다. 따라서 두 손 들고 환호할 법도 하건만, 지켜보는 중국의 시선이 영 곱지 않다. 일부 팬들은 “중국인을 모욕하는 영화”라고 벌써부터 보이콧을 선언하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샹치는 암살자로 키워지다가 무술 고수로 변신해 악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다른 영웅 캐릭터와 달리 그 흔한 첨단 무기나 초능력 하나 없어 과거 이소룡(李小龍)을 연상시킨다. 이에 맞서는 악당이 만다린(滿大人)이다. 20세기 초 영국 작가 색스 로머의 소설에 등장하는 푸만추(傅滿洲)를 모티브로 삼았다. 서구 정복을 꿈꾸는 잔인하고 냉혹한 캐릭터다. 푸만추는 중국인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조장하며 이들을 차별하고 억압해야 한다는 ‘황화론(黃禍論)’을 부추기는 데 악용돼 왔다.

마블이 량차오웨이(粱朝偉ㆍ양조위)를 만다린에 캐스팅하면서 중국인의 정서를 들쑤셨다. 량차오웨이는 ‘화양연화’, ‘중경삼림’, ‘일대종사’, ‘무간도’, ‘적벽대전’ 등 중국인의 감성과 의식을 대변하는 다양한 영화에서 큰 인기를 얻어 중국 ‘국민 배우’로 통한다. 그가 하필이면 부정적 이미지의 만다린 역을 덥석 맡아 마치 제 살을 깎아 먹는 것으로 비치고 있으니 중국인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을 만도 하다.

영국 작가 색스 로머가 1913년 발표한 소설 ‘푸만추 박사의 미스터리' 표지. 중국을 잔뜩 경계하는 서구의 황화론적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위키피디아

이에 상당수 네티즌은 량차오웨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따져 묻고 있다. “미쳤다”, “용서할 수 없다”, “실망스럽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격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미국과 무역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중국 특유의 애국주의와 맞물려 증폭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마블의 제작발표회 동영상은 불과 이틀 만에 조회수가 5억건을 웃돌았다.

반면 이 같은 히스테리적 반응이 “과도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타임스는 23일 “2013년 ‘아이언맨 3’에 이미 가짜 만다린이 등장했다”면서 “이 캐릭터가 진정 중국을 모욕했다면 당국이 중국 내 영화상영을 금지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민은 “량차오웨이가 미국 시장 진출이 아니라 연기의 폭을 넓히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감쌌다.

어쨌든 캐스팅 발표만으로도 이처럼 주목을 끌면서 영화 흥행은 떼어 놓은 당상인 분위기다. 중국 영화시장은 할리우드를 본 따 ‘찰리우드(차이나+할리우드)’로 불릴 만큼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 탓이다. 지난 4월 선보인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수입을 보면 중국이 6억2,910만달러(약 7,409억원)로 영국 1억1,480만달러(약 1,352억원), 한국 1억520만달러(약 1,239억원)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이다. 샹치는 2021년 2월 개봉한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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