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리펑(李鵬) 전 중국 총리가 23일 사망했다. 향년 91세.
외교 소식통은 “리 전 총리가 이날 새벽 베이징(北京)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관영 신화통신은 “사망시간은 22일 밤11시11분”이라며 “병환으로 서거했다”고 전했다. 중국 매체들은 “공산당 우수 당원, 충성스런 공산주의 전사, 훌륭한 무산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영도자”라고 그를 소개했다. 이날 오전부터 온라인에서는 ‘법률 위배 소지가 있어 내용을 열람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와 관련한 검색이 차단됐다.
리 전 총리는 1928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태어나 1931년 부모가 국민당에 체포돼 처형된 후 1940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저우 전 총리의 양자라는 소문이 많았지만 2014년 회고록을 통해 “삼촌이라고 불렀지만 양자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적으로는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으로 분류된다.
그는 1981년 전력공업부장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1987년에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일약 중국 최고 지도부에 올랐다. 1988년부터 10년간 중국 총리를 지내며 1992년 한중 수교의 결실을 맺었다. 1998년 총리에서 물러난 후 2003년까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우리의 국회의장)으로 재임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수교 2년 후인 1994년 10월 중국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김영삼 대통령과 회동했다. 2001년 5월에도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해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하지만 1989년 피로 물든 톈안먼 사태는 평생 꼬리표로 따라붙었다. 그는 학생과의 대화를 촉구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와 대립하며 인민해방군을 동원한 시위대 해산을 종용했다. 이후 ‘학살자’라는 오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들 리샤오펑(李小鵬)은 교통운수부장(장관), 2010년 중국 최고 여성경제인에 선정된 딸 리샤오린(李小琳)은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을 지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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