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95년 시카고, 시신은 왜 냉동트럭에 쌓였나

[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다큐멘터리 <3> 95년 시카고, 시신들은 왜 냉동트럭에 쌓였나

24년 전 시카고, 폭염으로 할머니를 잃었던 손녀는 어느새 노인이 되었지만 그날의 악몽은 그녀 마음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시카고에서 만난 발레리 브라운(67) 씨는1995년 시카고 폭염으로 할머니 엘버타 워싱턴을 잃었습니다. 할머니가 살았던 집 앞에서 만난 그녀는 7월의 아침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그날이 기억나요. 정말 너무 더운 밤이었어요. 침대 옆에 창문이 있어서 바람이 들어오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덥더라고요. 그때 혼자 계실 할머니 생각이 났죠.”

그녀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불길한 예감 속에서 그녀는 차를 몰고 할머니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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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 문을 두드렸죠.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어요. 창문도 다 닫혀있었죠.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집 안이 오븐처럼 뜨거웠어요. 동생이 계단을 내려가 방문을 열더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 속에서 발레리 브라운은 이 사건이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할머니 집 앞에 구급차가 아니라 냉동 트럭이 왔어요. 트럭 안엔 5, 6구의 다른 시신들이 장작처럼 쌓여있었죠. 거기에 시신 한 구가 더 쌓였어요. 저희 할머니의 시신이었죠.”

그녀가 목격했던 것처럼 95년 시카고의 더위는 단순한 여름 날씨가 아니었습니다. 그 해 시카고에선 최고 기온 41도를 넘는 폭염이 닷새 동안 이어졌습니다. 일주일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중엔 발레리 브라운의 할머니도 포함돼있었죠.

시카고 시내에 위치한 쿡 카운티 시체 안치소는 폭염 사망자들의 시신으로 순식간에 가득 찼습니다. 시신을 둘 곳이 없어 냉동 트럭까지 동원될 정도였습니다.

리즈 모이어 시카고대학교 지리과학학부 교수는 95년 시카고 폭염에 대해 “여름의 평균 기온이 아닌 불과 며칠 동안의 높은 폭염이 참사를 만들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폭염에 취약할까. 시카고 출신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95년 시카고 폭염 피해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폭염 피해와 사회적 요인의 상관관계를 추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카고 시내에서 서쪽으로 8km 떨어진 론데일 지역 사례였습니다.

도로 하나를 두고 북부와 남부로 나뉜 론데일 지역의 폭염 피해는 매우 이상했습니다. 남부 론데일 지역의 사망자가 3명이었던 것과 달리 북부 지역의 사망자는 6배가 넘는 19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론데일 지역 우버 드라이버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북부 론데일은 무너진 동네였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죠. 병원, 직업훈련소, 집… 여기엔 아무것도 없어요. 반면 남부 론데일 지역은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끈끈하게 연결돼 살고 있어요. 상업활동, 경제활동도 매우 활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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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치안과 이웃에 대한 공포는 북부 지역의 공동체 기능을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서로의 안전과 건강 상태를 신경 써줄 수 없는 환경이 되었죠. 반면 남부 지역에선 지역 사회 내 적극적인 정치, 경제, 문화 활동으로 이웃 간의 활발한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95년 폭염으로부터 25년이 지났지만 북부와 남부 지역의 차이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결국 빈곤율, 치안율, 공동체 결속력 등 인접한 두 지역의 사회적 차이가 재난 피해의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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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시내에서 남쪽으로 45km 떨어진 홈우드 공동묘지엔 95년 폭염 당시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 68명이 묻혀 있습니다. 이름조차 알 수 없거나 신상 정보가 밝혀졌더라도 아무도 찾지 않은 말 그대로 잊힌 사람들이죠.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노리는 폭염 재난, 어쩌면 잊힌 사람들의 겪는 잊힌 재난이 된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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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선PD changsun9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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