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한국일보]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박구원 기자

일제 강점기 한국의 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들에게 배상금을 받아낼 권리가 있는지를 두고 한일 양국 최고 법원은 15년 간격으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금 청구권이 포함돼 있어 더 이상 개인이 법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게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의 결론이다. 반면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 지배가 불법인 만큼 징용도 불법이고, 협정에 따라 한국에 지급된 돈에 배상금 성격이 없어서 위자료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의 핵심 쟁점은 1965년 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와 차관 2억달러에 징용 피해자 배상금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였다. 당시 협정문에는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한다’고 돼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를 근거로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청구권 협정에 징용으로 인한 배상 청구권이 이미 포함됐다는 논리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 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이 1억원씩 배상하도록 하면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의 권리는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 청구권이지,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 청구권이 아니라는 게 대법원 설명이다.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것인 만큼, 양국간 재정적ㆍ민사적 채권ㆍ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따라 해결한 청구권협정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포함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청구권협정과 이에 근거한 일본 국내법(청구권 특별조치법)에 따라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고 인정한 일본 최고재판소와 달리, 한국 대법원은 개인 청구권 소멸을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노예제 금지위반 등의 성질을 갖는 징용 피해 청구권은 국가간 협약에 의해 합의했더라도 소멸되지 않는 권리라는 게 최근 국제법 법리에 부합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또 하나의 한일 간 핵심적 인식 차이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와 징용의 법적 성격을 판단하는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인식 아래 자국민을 데려간 총동원령과 국민징용령도 합법이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일제 식민지배가 불법이므로 징용도 불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신일철주금과 일본제철을 서로 다른 회사로 간주한 반면, 한국 대법원은 동일성을 가진 회사로 판단한 것도 양국 최고법원의 시각 차를 드러낸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