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가 ‘경제보복’이 아니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언론과 주일 외교관 대상 설명회 등을 통해 수출 규제가 한국의 수출관리가 부적절해 이뤄진 것으로, 보복 조치와 무관하다고 강변했다. 우리의 전략물자 관련 통제제도 중 ‘캐치올 규제(상황 허가)’가 대량살상무기(WMD)에만 있고 재래식 무기에 대해서는 갖춰져 있지 않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절차 간소화 대상 국가)’ 배제가 불가피하다는 식이다.
일본은 23일(현지시간) 시작된 WTO 일반이사회에서도 이런 입장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일본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당장 일본 언론들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양국 갈등이 수출 규제의 배경이라는 점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미국 LA타임스와 블룸버그통신,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제3국 언론들도 잇달아 ‘정치 분쟁에 통상 무기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며 아베 정부가 한일 간 정치 갈등에 통상보복을 가동했다는 관점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 측 제도 미비 때문에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면 제도 개선 협의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면서 “제도 정비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양국 간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기만적이고 모순된 행태의 목적은 분명하다. 경제보복을 강화하면서도 자유무역 정신이나 WTO 규정을 위반한 건 아니라는 면책을 받으려는 속셈이다.
일본은 과거 진주만 공격 당시 선전포고조차 하지 않아 ‘비열하고 사악한 나라’라는 오명을 썼다. 이후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지도적 모범국가 이미지를 쌓기 위해 노력해 온 이유다. 하지만 경제보복을 둘러싼 아베 정부의 기만적 행태는 애써 높여온 일본의 국격을 다시 한 번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번 경제보복은 국가 간 정치ㆍ외교적 갈등을 이유로 한 통상보복이 명백하다는 점에서 자유무역에 대한 중대 위협이다. 특히 명백한 사실에 대한 기만 그 자체가 WTO 체제를 우롱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각성과 태도 변화를 재차 촉구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