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실장, 주요국 대사 일일이 만나 “日 조치 부당”… 日 외무성 경제국장 “징용배상과 무관”
한일 양국이 23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놓고 치열한 국제 여론전을 벌이며 격돌했다. 우리 정부는 WTO 주요 회원국을 상대로 일본 수출 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설명하는데 집중했고, 일본 측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과 무관한 수출관리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김승호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해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정식 안건으로 논의되기 이전에도 주요 회원국 대표들을 만나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설명했다. 김 실장은 회의 시작 5분여 전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이미연 차석대사 등 정부 대표단과 함께 WTO 회의장에 도착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WTO 이사회에 오른 14개 안건 중 11번째로 일본의 수출규제가 논의된다”며 “김 실장은 쉬는 시간마다 WTO 이사회에 참석한 주요국 대사들을 일일이 만나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특히 일본이 다음달 시행을 예고한 한국의 ‘화이트(백색) 국가’ 제외는 WTO 규정의 근간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0조 3항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GATT 10조 3항은 ‘수출 규정을 일관되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평등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통상위원장을 지낸 송기호 변호사는 “일본 정부는 2003년 한국을 백색 국가에 추가하고, 2008년엔 한국에 규제 면제를 시행하면서 그 이유로 ‘한국은 수출관리가 적정하게 되고 있는 국가’로 언급했었다”며 “그 이후 한국에선 아무런 상황변화가 없었는데도 일본이 한국을 제외하는 건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김 실장은 전날 스위스 제네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여론 띄우기에 나섰다. 그는 취재진들과 만나 “백색 국가 문제까지 확대하면 일본의 (WTO 규범) 위반 범위는 더 커진다”며 “일본 정부가 신중하게 조처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일본이 이미 시행한 3건의 수출규제 조치만으로도 WTO 규범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더 이상 일본이 국제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 측에선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외무성 경제국장이 WTO 일반이사회에서 주요 회원국 대사들을 상대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자유무역에 어긋난다는 한국의 주장을 반박했다. 야마가미 국장은 김 실장과 달리 이날 오후 늦게 WTO 이사회에 참석했고,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가 정부 대표로 오전 10시10분쯤 회의장에 도착했다.
일본 측은 △안전보장에 관한 수출관리의 운용은 각국 법령에 위임하고 △군사전용 가능품목과 관련한 부적절한 사례로 인한 운용의 재검토가 가능하고 △안전보장상 필요한 경우 수출제한을 예외로 인정하는 WTO 규정 등을 근거로 자국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과 무관한 수출관리 상의 조치라는 것이다.
다만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인건 논의는 24일로 미뤄졌다. 당초 일본의 수출규제 안건은 이날 현지시간으로 오후 4시 정도에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앞서 진행됐던 안건들의 논의가 지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은 24일 다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서 수출 규제 문제를 놓고 격돌하게 됐다
WTO 일반이사회는 각국의 무역 분쟁 해결을 위한 자리가 아닌 만큼 이 자리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2년마다 열리는 각료회의를 제외하면 WTO의 실질적인 최고기관으로서 160여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리라는 점에서 일본 측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WTO 일반이사회가 일본 정부의 입장을 확실히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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