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의 폭격기가 23일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고,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침범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응 출격한 공군 전투기들이 러시아 조기경보기를 향해 수백 발의 경고사격을 가했다. 타국 군용기의 영공 무단 침범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인 데다, 중러 폭격기가 동시에 KADIZ에 진입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어서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간의 전략 경쟁 가속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한일 갈등에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중러 폭격기의 침범은 양국 합동훈련 중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오전 6시44분께 중국 폭격기 2대가 먼저 이어도와 울릉도 부근 KADIZ에서 진입과 이탈을 반복하다 동해 북방한계선(NLL) 북방에서 러시아 폭격기 2대와 합류해 다시 KADIZ를 침범했다. 비슷한 시각 러시아 조기경보기 1대가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범했고, 그때마다 공군 전투기들이 차단 비행과 함께 경고 사격을 했다고 군은 밝혔다. 중러 군용기 여러 대가 동해와 남해를 3시간 넘게 휘젓고 다닌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다. 공교롭게도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방한하는 날이어서 대미 압박성 ‘무력 시위’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군용기가 남해와 서해에 이어 동해까지 제집 드나들 듯한 지는 오래다. 지난해 동해 8차례를 포함, 총 140여차례나 KADIZ를 무단 진입했다. 국가별로 임의 설정한 구역이지만 관할국 군 당국에 사전 통보하는 게 관례라는 점에서 중국의 침범은 KADIZ 무력화를 노린 전략이다. 서해는 물론 동해도 중국군의 세력권으로 확장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
중러 전투기가 KADIZ를 넘어 영공까지 침범한 것은 우리 안보를 위협한 중대 도발이다. 매번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이 화근이 됐다.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에 엄중 항의했다지만 더 강력한 대응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도 새삼 환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독도에서의 경고 사격에 대해 일본 정부가 이날 “우리 (독도) 영토에서 이런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했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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