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묻는다. 맨살을 다 드러낸 채 재킷만 걸친 남자 연예인(송민호)의 공항 패션은 멋진 거고, 예능 프로그램 남성 사회자(전현무)의 돌출 유두는 개인기가 되는지.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그녀의 노브라가 인터넷을 흔들었다. 궁금했다. 양대 포털에 ‘화사’ ‘공항 패션’이라는 검색어를 넣고 사진이 찍힌 7월 10일 이후 기사를 찾아봤다. 각각 350건, 380건이 검색됐다. 이번에는 노브라의 원조 격 연예인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가수 ‘설리’와 ‘노브라’를 검색해 봤다. 각각 1,100건, 1,400건 기사가 떠 있다. 역시 노브라의 힘은 위대했다.

그런데 내용은 그게 그거였다. “당당해서 보기 좋다”와 “보기 민망하다”로 반응이 엇갈렸다는 것 정도다. 가치 판단이나 담론은 없었다. 그녀를 통해 노브라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뉴스 밸류’라는 사실만 재확인됐다. 공공 장소에서 윗도리를 벗어젖힌 바바리우먼도 아니고, 단지 남들이 많이 입는 속옷을 안 입었다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노브라’라는 단어 자체에 ‘브라는 하는 게 정상’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노브라(또는 탈브라)와 토플레스(topless)는 다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노브라는 그냥 개인의 선택일 뿐이지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다만 공공 장소에서 가슴을 다 드러내는 문제는 그쪽도 논쟁 중이다. 열심히 자료를 뒤져봤는데 미국 51개주 중 절반이 넘는 주는 여전히 공공 장소에서의 여성 가슴 노출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노브라는 페미니즘과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과 맞물린 ‘탈코르셋’ 캠페인과도 맥락이 좀 다르다. 탈코르셋은 남의 기준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사회 통념이 강요한다고 여기는 여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의 기준에 저항하는 의식적 행동이다. 패션부터 체형, 메이크업, 생리, 겨드랑이 털에 이르기까지 당당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브라는 그냥 편의와 건강의 측면이 더 크다. 전투적 행위가 아니다. 표시가 안 나면 문제가 안 된다. 여성에게 불편한 건 노브라 패션이 아니라 브래지어 착용 그 자체다. 일부 남자들은 노브라 패션이 시선에 불편을 준다고 말한다. 공동체의 통념에도 어긋난다고 질타한다. 거기에 인식의 간극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패드와 와이어가 없는 브라렛(brarette)은 편리와 시선이 타협한 브라의 진화다.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젖꼭지를 노출하는 것과 옷 속으로 비치는 건 분명히 다른 현안이 아닐까. 노출하는 행위는 정치적 사회적 또는 성적 의도가 있다고 보지만, 비치는 건 사실 그리 난리브루스를 떨 일까지는 아닌가 싶다.

남성 세계의 호들갑 자체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는다.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사실 여자들은 노브라 표시가 안 나게 옷 입는 법을 잘 안다.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는 거다. 여성들은 묻는다. 맨살을 다 드러낸 채 재킷만 걸친 남자 연예인(송민호)의 공항 패션은 멋진 거고, 예능 프로그램 남성 사회자(전현무)의 돌출 유두는 개인기가 되는지.

브라는 엄밀히 말하면 속옷이다. 속옷은 개인 영역이다. 그 선택권은 그 사람에게 있다. 그 정도에는 관대해질 만한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여성도 노브라를 선택한 날은 시선에도 자유롭고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선 강간’이란 말은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아무튼 한 셀럽의 노브라 공항 패션을 둘러싼 뉴스를 보면서 우리는 별일도 아닌 것에 너무 소모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정적 이슈를 자꾸 확대재생산해서 클릭 수나 올리려는 인터넷 미디어의 불순함만 도와주는 프로불편러가 돼 가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수백만 장의 젖가슴을 검색할 수 있는 대명천지에 살고 있는데 그까짓 젖꼭지 하나 옷 속으로 잠시 비쳤다고… 유럽의 어느 토플레스 시위에서 나온 구호가 생각난다. “전쟁과 젖꼭지 중 무엇이 더 위험한가?”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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