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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함바왕’ 유상봉 “공직자 빈손으로 만난 적 없다” 500억 로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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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함바왕’ 유상봉 “공직자 빈손으로 만난 적 없다” 500억 로비 주장

입력
2019.07.24 04:40
수정
2019.07.24 08:0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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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함바 게이트 장본인… 인천 정치인 등 겨냥 무더기 진정 

 “경찰서장급엔 한번에 300만원, 치안총감에겐 1000만원씩 전달” 

 

지난 1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상봉씨가 자필로 작성한 진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홍인택 기자
지난 1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상봉씨가 자필로 작성한 진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홍인택 기자

2011년 건설현장 현장식당인 ‘함바’ 운영권을 알선해주고 뇌물을 받은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비롯해 경찰청 경무국장, 울산경찰청장 등 경찰 최고위직을 초토화시킨 이른바 ‘함바 게이트’다.

함바 게이트를 열어 젖힌 장본인은 함바 업계의 큰손이었던 유상봉(73)씨다. 당시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유씨에게는 징역 1년 6월이 선고됐다. 2013년 출소한 유씨는 다른 사건으로 5년을 더 복역했고 지난 달 출소했다.

유씨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7년에 가까운 세월을 옥중에서 보내며 자신에게 금품을 받았던 고위공직자와 유력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필로 적어 진정서를 작성했다. 언제 어떤 건설현장 함바 수주를 위해 누구를 만나 얼마를 줬고, 해당 인물은 이 돈을 어디에 썼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세세한 내용을 담았다. 일부는 옥중에서 검찰에 접수했다. 일부는 마지막 페이지에 날짜만 빈칸으로 남겨둔 채 접수를 준비 중이다.

지난 2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유상봉씨가 진정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택 기자
지난 2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유상봉씨가 진정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택 기자

유씨의 ‘옥중 진술서’는 출소 전부터 다시 세간을 들썩이게 했다. 서울경찰청장과 경기남부경찰청장 등 경찰 최고위직 인사들이 유씨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이 ‘경찰 흠집내기’를 위해 유씨의 진정 사건을 일부러 공개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고개를 들었다. 서울구치소에 있던 유씨에게는 인터뷰를 요청했다.

유씨는 본보에 “검찰에서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큰 오해”라며 “국회의원 등 전ㆍ현직 고위 공직자와 경찰 고위직 50여 명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작성해서 가지고 있다”고 답을 했다. 그는 “이들이 공직자로서 새로운 각성과 함께 정의로운 사회 구현에 일조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출소 이후 네 차례 본보와 만난 유씨는 “액수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소 500억원 이상은 (공직자와 유력인사들에게)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유씨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모든 공직자가 유씨의 ‘타깃’은 아니다. 유씨는 “정말 질이 안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며 “돈 받은 것을 반성하지 않고 당연시 하는 이들, (로비를 위한) 인사비 등으로 돈을 받고 자기가 다 써버린 사람들을 문제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유상봉씨가 인천지역 유력 정치인들 관련 진정 사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홍인택 기자
지난 21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유상봉씨가 인천지역 유력 정치인들 관련 진정 사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홍인택 기자

유씨는 인천지역 유력정치인 2명과 그들의 측근으로 소개받았던 이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인천지역 주요 건설현장 함바 운영권 수주를 위해 정치인 A씨 측에는 16억원 이상을, B씨와 잘 안다는 2명에게는 10억원 이상을 건넸다고 했다. 유씨는 앞서 이들을 고소했지만 2016년 인천지검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유씨는 “인천지검이 아닌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해달라”며 당시 검찰 처분 내역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진정서를 작성해 지난 5월 대검에 접수했다.

유씨의 진정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다. 유씨는 “당시 검찰이 뻔한 거짓말을 근거로 무혐의 처리를 했다”면서 검찰의 수사 의지를 전제로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유씨의 진정서에는 B씨와 가깝다고 알려진 C씨가 함바 수주를 명목으로 5억8,000만원 가량을 받아간 사건이 담겼다. C씨가 돈만 챙기고 운영권을 따주지 않아 사기라는 게 유씨의 주장이다. 유씨는 자신이 건넨 돈 중 일부가 B씨 부친의 팔순 잔치 비용, B씨 선거캠프의 수고비 등에도 사용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상봉씨가 고위공직자 수십여 명의 뇌물수수에 대해 작성한 진정서가 담긴 봉투. 홍인택 기자
유상봉씨가 고위공직자 수십여 명의 뇌물수수에 대해 작성한 진정서가 담긴 봉투. 홍인택 기자

C씨는 이미 혐의를 벗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C씨는 “무죄(무혐의)를 받았는데 재고소를 해서 2번이나 조사를 받았다”면서 “전부 검찰에서 소명이 돼 무죄가 났으니 재론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유씨는 “함바 비리로 수사를 받는 동안 수사기관에서 나를 인정했던 한 가지가 있다”며 “그건 어느 누구도 빈손으로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났냐, 안 만났냐가 중요한 것이지, 만났다면 그거(돈을 넘겼는지) 하나만큼은 따지지 않았다”고 했다.

 -뒤늦게 진정을 하는 이유는. 

“(함바 비리 관련 수형생활을 마치고) 5년이란 세월 동안 ‘생징역’을 살았다. 나는 (진정서를 작성한 이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명백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순수한 정의감으로 진정서를 쓰게 됐다. 썩은 부분은 도려내야 한다.”

 -‘정의감’이 이유의 전부인가. 

“B씨와 가깝다는 이들과 관련해 2015년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말도 안 되는 걸 1시간 20분동안 보도했다. 자기들이 돈을 받아가 놓고 (마치 내가 협박하고 있다는 듯) 허위사실을 사실인 것처럼 폭로했다. 선거캠프에 조건부로 현금 2,000만원을 전달했는데, 그걸 나에게 뒤집어 씌웠다. 내가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꼭 밝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도 약이 올라서 고소했는데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이런 내용을 이야기했다가는 내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지만 바로 잡아야 한다.”

유상봉씨가 2011년 7월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서울 광화문의 커피숍 등에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상봉씨가 2011년 7월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서울 광화문의 커피숍 등에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무엇이 그리 억울한가. 

“돈을 준 내역이 다 있는데 그걸 검찰에서 조사를 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B씨와 잘 안다는 D씨는 나를 도와주겠다며 돈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도와준 게 없다. D씨를 조사한 검찰에서는 아마 D씨가 살인을 해도 무혐의 처리할 것이다. 절대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 나는 그 사람과 대질을 해서 금융거래 내역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또 나에게 3,000만원을 받고도 멀쩡히 활동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국회에서 떠들어대는 걸 보면 울화가 치민다. 그래서 재차 진정서를 쓰게 됐다. 특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A와 B씨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미 무혐의 처리된 사건들을 뒤집을 증거가 있나. 

“2016년 C씨를 인천지검이 무혐의 처분했을 때 ‘고소 내용은 70%가 거짓’이라는 참고인 진술이 무혐의 사유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참고인은 인천지검에 출석한 적이 없고 ‘나는 그렇게 진술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확인서를 받아 진정서와 함께 대검에 제출했다. 또 C씨에게 돈을 건넸던 내역을 적은 수첩 원본 역시 인천지검에 제출하려고 했지만 ‘보관하고 있으라’고 해 지금 내가 갖고 있다.”

 -돈은 어떤 방식으로 전달했나. 

“내 습관은 이렇다. 휴대폰을 보통 2개를 가지고 다니며 양복 상의 왼쪽에는 휴대폰을, 오른쪽에는 돈봉투를 넣는다. 5만원권 지폐가 나오기 전에는 서류봉투에 만원권을 차곡차곡 넣으면 2,000만원 정도 넣을 수 있었다. 2009년에 5만원권이 나온 뒤에는 3,000만~4,000만원은 표시 나지 않게 들고 다닐 수 있었다. 경찰서장급은 한 번에 300만원씩, 경무관은 500만원씩, 치안총감은 한 번 만날 때 1,000만원씩 전달했다. 검찰 수사에서도 이거 하나는 인정을 받았다. 그 사람들 만날 때 빈손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났냐, 안 만났냐를 따졌지 돈을 전달했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만났으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유상봉씨가 고위공직자 등에게 돈을 건넬 때마다 기록했다는 수첩을 보여주고 있다. 홍인택 기자
유상봉씨가 고위공직자 등에게 돈을 건넬 때마다 기록했다는 수첩을 보여주고 있다. 홍인택 기자

 -함바 운영권 수주를 위해 경찰들에게 로비를 한 이유는. 

“오랜 경험에 의하면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함바 인ㆍ허가권이 구청ㆍ시청 등 지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청ㆍ시청과 경찰서는 매우 밀접한 관계다. 경찰서에는 지자체 전담 정보관이 있고 재건축현장 전담 정보관도 있다. 전담 정보관은 저녁 회의 전에 지자체에 대한 동향 보고를 경찰서장에게 한다. 지자체장이 무슨 일을 잘못하고 있다면 경찰이 약점을 쥐고 있을 수도 있다. 경찰 고위직을 통해 경찰서장을 소개받고, 서장을 통해서 지자체장 등을 소개받아 함바 사업권을 따냈다.”

 -함바 사업의 수익은 얼마나 됐나. 

“많은 언론에서 나를 ‘함바 브로커’라고 하지만 브로커가 아니라 공동운영을 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수주를 받은 함바에는 우리 직원이 파견 나가 식자재 관리, 세금 관리 등도 했다. 수익은 공사금액이 1조라고 하면 그 중 1%인 100억원 정도가 식대다. 여기서 함바 업체는 40억원 정도를 수익으로 가져간다. 나는 그 중 30%인 12억원 정도를 선금으로 받는 구조였다. 이렇게 번 돈 대부분은 함바 수주를 위해 재사용했다. 정확히는 말하기 어렵지만 공직자 및 유력인사들에게 준 돈이 500억원 이상은 된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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