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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21세기 장기 전쟁 상황 대비하기

입력
2019.07.24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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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발,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장기 전쟁 상황에 편승하고 있다

일련의 위기 대비할 실력 키워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당선자들 이름 옆에 장미꽃 조화를 붙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공명당과 함께 이날 치른 참의원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과반을 확보했으나 개헌 발의선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도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당선자들 이름 옆에 장미꽃 조화를 붙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공명당과 함께 이날 치른 참의원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과반을 확보했으나 개헌 발의선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도쿄=연합뉴스

수출 규제를 경제 전쟁으로 확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일본은 왜 이런 일을 벌일까? 일단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 한일 관계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일본이 그런 도발을 할까? 아닐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처럼 다소 추상적인 말 대신, 더 명확한 관점을 취해보자. 어쨌든 복합적인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 경제 전쟁은 일본에도 적잖게 피해를 입힐 터인데, 어째서 감히 그런 도발을? 자신들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크게 착각했든지, 아니면 자신들이 입을 피해에 상관없이 어쨌든 그런 일을 벌여야 한다는 강박에 빠졌든지. 둘 모두일 수 있고, 나쁜 상황이다.

문제는 이미 위안부나 강제 징용자 배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거기에 관해 우리 정부가 제대로 못 한 것도 있지만, 문제는 이미 그것도 넘어간다. 한국을 경제적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핵심 플랜이 없다면 아베 정권이 이런 도발에 나설 리가 없다.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방해하며 무역전쟁을 벌이는 것이 가까운 목표이겠지만, 거기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그것을 넘어가는 문제가 또 있다. 점점 고조되는 지구적 차원의 비이성적 갈등 구조가 있는데, 일본은 거기 올라타서 이익을 취하고자 한다. 일본의 무역 규제가 앞으로 부분적으로 조정되더라도, 세계적으로 고조되는 장기적인 준(準) 전쟁 상황은 계속 진행할 것이며 앞으로 최소한 한 세대 동안은 지구 차원에서 그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 예측을 뒷받침하는 일련의 불길한 징조들을 보자.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은 일시적 분쟁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2차 대전 이후 자리 잡은 자유무역 시스템과 국제관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징조다. 초강대국이 되려는 중국의 계획은 앞으로 한 세대 동안 계속 진행될 것이며, 미중 사이에 안정적인 힘의 균형이 자리 잡기 전에는 준 전쟁 상황은 사납게 계속될 것이다.

인공지능 등의 기술 발전도 앞으로 한 세대의 혼란기 동안 급격하게 기술 및 고용 전쟁을 야기할 경향이 크다. 저숙련 일자리들이 전반적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와중에, 좋은 대학과 고소득 직장을 둘러싼 경쟁은 교육전쟁을 확대시키고 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고학력자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몰리고 부동산가격은 세계적으로 폭등하고 있다. 고비용 교육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잉여가 되는 고학력자들 규모는 새로운 불만을 야기할 것이다.

기후 변화를 비롯한 지구의 생태적 위기도 개별 국가들의 자유주의적 경향을 약화시키고 세계적으로 무역전쟁을 부추길 것이다. 경제 성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개별 국가들의 경향이 바뀌기 힘든 가운데, 많은 기후 변화 자료들은 앞으로 한 세대 동안 생태적 위기가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제로성장은 사회적 갈등을 가중시키며, 각자의 문제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지구 문제엔 눈을 감은 채 자원 쟁탈전에 나서야 한다. 이민자들의 행렬 속에서 근대적 자유주의와 보편주의는 무력해진다.

이렇듯 여러 겹의 준 전쟁 상황이 진행 중이다.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오자. 십여년 동안 학생들에게 일본과 중국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위험이냐고 물어보았다. 중국이었다. 그런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과의 협력과 동맹은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일본이 감히 동맹을 뒤흔든다? 그리고 미국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으며 쳐다본다? 일본과 미국이 모종의 밀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미국이 위기 상황에서 일본과 손을 잡고 한국을 슬슬 흔든다는 건, 기존의 협력과 동맹이 약화되고 있다는 나쁜 징후다.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잘 대비해야 한다. 일련의 세계적 위기 징조들을 무시한다면, 암울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어쨌든 일본의 도발이 장기 전쟁 상황에 대비할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를! 이 장기 전쟁 환경을 염두에 두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며, 실력을 키워야 한다. 어떤 도발에도 쉽게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실력!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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