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태국 청년들도 다쳤을텐데... 우리 구한 뒤 사라져 걱정”

알림

“태국 청년들도 다쳤을텐데... 우리 구한 뒤 사라져 걱정”

입력
2019.07.23 14:15
수정
2019.07.23 18:42
10면
0 0
지난 22일 오전 7시 33분쯤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도로에서 승합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나 구조대가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7시 33분쯤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도로에서 승합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나 구조대가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국 젊은이들도 다쳤을 텐데… 차 안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를 모두 꺼내주고 치료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는데 걱정이여.”

병원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도 생명의 은인부터 찾아야 한다고 했다. 부상 당한 자신 보단 목숨을 구해준 태국인들의 행방에 마음이 쓰였다. 22일 오전 타고 가던 승합차의 전복 사고로 부상 당한 이모(70)씨가 충남 홍성의료원에 병문안을 온 군청 직원에게 전한 부탁은 그랬다.

이모씨는 충남 홍성에서 경북 봉화로 밭일을 가던 도중 당한 교통사고로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이모씨가 탑승한 그레이스 승합차는 사고 당일 오전 7시33분께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인근의 일명 ‘석개재’ 지방도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됐다. 이 사고로 승합차에 탑승했던 16명 가운데 운전자 강모(61ㆍ충남 홍성군)씨와 정모(61ㆍ충남 홍성군)씨, 태국 국적 근로자 2명 등 4명이 숨졌다. 또한 이모씨 등 9명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사상자들은 사고 당일 오전 1시께 홍성을 출발, 봉화로 고랭지 채소 작업에 나섰던 홍성지역 노인과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사고로 다친 동료 2명과 함께 연고지로 후송된 이모씨는 사고 직후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 안에서 자신들을 구조해 준 태국인 3명이 치료도 받지 않고 119구급대 도착 직전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했다. 이모씨는 군청 직원에게 “다친 우리를 살려 준 태국사람들을 꼭 찾아서 치료를 받게 해줘”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22일 삼척 승합차 전복사고로 부상을 당해 충남 홍성의료원에 입원중인 이모(70)할머니를 김석환 홍성군수가 위로하고 있다. 홍성군 제공
지난 22일 삼척 승합차 전복사고로 부상을 당해 충남 홍성의료원에 입원중인 이모(70)할머니를 김석환 홍성군수가 위로하고 있다. 홍성군 제공

경찰은 승합차에 탔던 외국인 9명 전원의 비자가 만료된 상태에서 홍성의 한 숙소에서 함께 생활해온 것으로 확인했다.

이모씨 등을 구조한 부부와 남성 등 태국인 3명은 불법체류 신고 및 추방이 두려워 사고 직후 현장을 빠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당시,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은 조수석 방향에 탑승했던 이들은 타박상 등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23일 오후 전복 사고 현장을 빠져 나온 이들이 당초 머물렀던 홍성의 숙소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탄로나 추방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에게 당장 추방 등 조치가 없다는 점을 알리고 치료부터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앞서 경찰에선 사고 당일 병원에 입원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혹시 현장을 빠져 나간 3명의 태국인들과 연락이 닿을 경우 심한 처벌 없이 치료를 받게 해 주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홍성군도 3명의 태국인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지역 다문화센터와 지인들에게 “이들과 연락이 닿으면 병원치료를 꼭 받으라고 권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준학 삼척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은 “사라진 태국인들이 숙소가 있는 홍성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홍성경찰서와 공조해 위치를 파악했다”며 “부상 정도가 심하진 않더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고령화와 일손 부족 등에서 비롯된 우리 농촌의 열악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손이 없다 보니, 다른 지역의 60~80대 노인과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까지 불러 모아야 하는 게 우리 농촌의 현주소다. 이들에게 지불되는 하루 평균 일당은 8만~12만원으로 알려졌다.

영세한 무허가 운송업체의 난립도 문제다. 빡빡한 작업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장거리 새벽 길 운행에 나서야 하는 일정 탓으로 사고 위험은 상당하다. 이번 사고 차량도 출고 된지 17년이나 지났고 오전 1시께 홍성을 출발, 6시간 넘게 이동했다. 숨진 운전자 강씨도 10년 전, 비슷한 사고로 5명이 숨지는 등의 인명 피해를 낸 바 있다.

홍성군 관계자는 “강씨가 허가를 받아 인력업체를 운영하지는 않고 영농철 바쁠 때만 인력을 모집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농사철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통사고와 관련된 보상책도 시급하단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많은 일손이 필요한 시기에 농촌 노인과 외국인노동자의 지역간 이동횟수와 이동거리가 늘면서 교통사고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며 ''알선업자 상당수가 무허가 노후차량 자가용 영업으로 사고 발생시 피해가 커져 안전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성=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삼척=박은성기자 esp7@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