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일상이 된 폭염과 미세먼지는 도시에서의 삶을 질식시킨다. 공해가 심할수록 전원 생활을 향한 갈망도 커지지만 대부분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숨막히는 도시에 주저앉고 만다. 시한폭탄처럼 날아들 전기료 고지서를 걱정하면서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산소통처럼 달고서 말이다. 지난해 6월 경기 분당구 운중동 주택단지에 백은찬(58)ㆍ최인경(52) 부부가 지은 지하 1층~지상 2층의 연면적 298.86㎡(90평)의 집은 도시의 공해로부터 자유로운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다.
친환경 건축의 선두주자 독일에서 1990년대 만들어지기 시작한 패시브 하우스는 단열과 기밀 성능을 강화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공법으로 지은 주택을 말한다. 국내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태양열과 지열 에너지를 능동적으로 끌어 쓰는 액티브 하우스(Active House)와 비교하면, 패시브 하우스는 실내 공기를 조절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수동적인 방식이다. 여름엔 아이스박스, 겨울엔 보온병처럼 온도를 유지하는 집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아파트와 빌라에 살면서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고, 곰팡이나 결로 등과 전쟁을 벌였던 부부가 ‘살기에 건강한 집’을 목표로 지었다. 의사인 백씨는 “아파트는 관리가 편했지만 답답했고, 주택형 빌라는 조용했지만 춥고 더웠다”며 “패시브 하우스는 아파트처럼 편하면서도 단독주택의 장점을 살린 미래형 주택”이라고 말했다.
◇실내 온도 25도, 습도 60%, 미세먼지는 ‘0’
서울 등 수도권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18일 바깥 온도는 36도까지 치솟았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성남시)의 미세먼지 농도는 58㎍/㎥(오후 1시 기준ㆍ나쁨 수준)에 달했다. 후텁지근하고 탁한 공기는 부부의 주택에 들어서자 말끔히 사라졌다. 집안 실내 온도는 25도에, 습도는 60% 안팎. 미세먼지 농도는 ‘0’에 가까웠다. 믿기지 않은 쾌적함에 재차 물었다. “정말 에어컨이 없다고요?”
패시브 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열’이다. 열의 이동을 차단한다는 얘기다. 한여름 유리 건물 내부가 찜통으로 변하거나, 한겨울 노출 콘크리트 건물 내부가 시베리아로 변하는 것은 단열이 안 됐기 때문이다. 패시브 하우스는 이런 단점을 벽체 내 특수 단열재를 사용해 보완한다. 벽체 단열재 두께는 250㎜로 일반 주택(140㎜)에 비해 훨씬 두껍다. 안팎으로 두툼한 단열재를 쓴 뒤에는 공기가 빠져나갈 틈을 최소화(기밀)한다. 집의 창은 크지만 3중 창호를 사용해 기밀도를 높였다.
랩으로 꽁꽁 싸듯 외부와 차단된 집 내부의 신선한 공기 비결은 지하에 있다. 지하 기계실에는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는 폐의 역할을 하는 열 교환 환기장치가 설치돼 있다. 일반 주택에는 없다. 이 장치는 실내의 탁한 공기는 내보내고 들어오는 공기는 걸러 준다. 여름에는 바깥의 더운 공기를 차갑게 식혀 안으로 들이고, 겨울에는 반대로 차가운 공기를 데워 준다. 단열과 기밀로 무장한 집을 숨쉬게 해준다. 들어온 공기는 미세먼지를 걸러 주는 필터를 거쳐 환기구를 통해 집안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이 과정에서 제습기와 연결해 습도도 조절된다.
보이지 않는 공기가 삶의 질을 바꿨다. 자고 일어나면 탁한 공기에 머리가 아팠던 부부는 집을 옮기고 난 후 상쾌하게 아침을 맞는다. 보통 문을 닫고 자면 이튿날 아침 방 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0ppm에 달하는데, 패시브 하우스는 농도가 500ppm에 불과하다.
단열과 기밀로 새는 열을 막고 끊임없이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한편 실내 온도는 바닥 난방으로 관리할 수 있다. 온돌처럼 바닥에 배관을 넣어 온수를 흘려 보내 난방하고, 여름철에는 냉수를 흘려 보내 복사 냉방 효과를 낸다. 층마다 배관을 넣어 층별 온도 차를 최소화했다. 설계를 맡은 최정만 소장(자림이앤씨건축사사무소)은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해도 춥고 더우면 실패한 집”이라며 “패시브 하우스는 기본을 갖춘 건강한 집”이라고 소개했다. 패시브 하우스 건축 비용은 일반 주택보다 평균 15%정도 더 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전기료와 난방비가 적게 들어 경제적이다. 지난 1년간 부부가 낸 전기료와 난방비 등 집 관리비가 총 100만원. 같은 크기 빌라에서 살 때 한 달 관리비 격이다. 부부는 “지을 때는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살면서 돌려받는다”고 했다.
◇2층에는 세 딸 방 나란히, 지하는 취미 놀이터로 반전
집의 외ㆍ내부 디자인도 집의 기능을 극대화한다. 외관에 사용된 얇은 나무 패널은 차양 역할을 해 집이 쉽게 뜨거워지지 않도록 한다. 창문 외부의 전동 블라인드도 햇빛의 양을 조절하기 위한 장치다. 지붕에는 태양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이 부착돼 있다. 주변에 대리석과 벽돌 등으로 마감한 화려한 건물에 비하면 단출하지만 오히려 알찬 존재감이 느껴진다. 최 소장은 “가족이 살기에 쾌적한 집의 틀을 만드는 게 건축가의 의무라면, 집을 어떻게 꾸밀지는 구성원들이 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내부는 다섯 가족의 동선을 고려해 공간을 배치했다. 20대인 세 딸의 방은 2층에 있다. 각자의 성향에 맞춰 방의 특징도 다르다. 첫째의 방은 깔끔하고 네모 반듯한 남향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둘째는 방 안에 드레스룸을 따로 마련했다. 셋째는 복층 구조의 방이다. 북향이지만 아늑하다. 세 딸의 방을 연결하는 작은 거실과 욕실과 이어지는 파우더룸은 재기발랄하고 아기자기하다. 방에는 형광등 대신 가족들이 좋아하는 간접조명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냈다.
1층은 주방과 거실을 연결한 공간이 중심이다.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는 저녁을 위해 TV 등 군더더기를 배제했다. 주방 확장으로 좁아진 부부의 방은 두 면에 창을 크게 내 답답함을 해소했다. 부부는 “침대에 누우면 창으로 산과 하늘이 보여 좁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흔히 창고나 주차장으로 쓰이는 지하공간의 반전도 놀랍다. 환기장치가 있어 쾨쾨하거나 습하지 않다. 지하에는 서재와 운동실, 방음시설이 갖춰진 AV룸까지 있다. 가족들이 독서, 운동, 영화 감상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한다. 다들 한창 바쁠 때인데도 이 집에 살기 시작한 후 ‘집돌이ㆍ집순이’가 됐다. “집을 짓고 나서는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도서관을 가는 등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크게 줄었어요. 집에 있을수록 건강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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