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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떠난 지 1년... 6411번 첫차 속 ‘투명인간’ 고단한 삶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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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떠난 지 1년... 6411번 첫차 속 ‘투명인간’ 고단한 삶은 그대로

입력
2019.07.23 04:40
수정
2019.07.23 15:57
2면
0 0

7년 전 노 前의원 연설로 알려졌지만 새벽4시 첫차는 여전히 콩나물시루

승객 다수는 60대 강남 여성청소원… 준비해 온 방석 깔고 바닥에 앉기도

22일 오전 4시 서울 구로동 거리공원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는 6411번 첫 차에 승객들이 타고 있다. 박진만 기자
22일 오전 4시 서울 구로동 거리공원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는 6411번 첫 차에 승객들이 타고 있다. 박진만 기자

“그날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에서 찍어가고 신문에 나왔지만 달라진 거 하나 없잖아. 우린 이렇게 10년 넘게 매일 서서 가니까.”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1주기를 하루 앞둔 22일 오전 3시 40분. 거리에 차 하나 다니지 않을 만큼 깜깜했지만 서울 구로동 ‘거리공원 정류장’은 하나 둘 모여든 승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출근을 하기 위해 첫 차를 타야 하는 새벽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출근을 책임지는 버스는 노 전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선거 당시 수락 연설로 화제를 모았던 ‘6411번’이다.

정류소 전광판시계가 오전 3시 58분을 가리키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시계는 2분 늦어. 이제 버스 들어 온다.” 15년째 이 버스를 타고 강남역에 출근한다는 청소노동자 황모(65)씨는 시계보다 정확했다.

6411번 버스는 노 전 의원의 상징이었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2,000자짜리 연설문은 지난해 7월 23일 노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이후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던졌다. 노 전 의원은 6411번 첫 차를 타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투명인간’이라고 표현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 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22일 오전 4시 50분쯤 6411번 첫 차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승객들로 만원이다. 박진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22일 오전 4시 50분쯤 6411번 첫 차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승객들로 만원이다. 박진만 기자

이날 첫 차 안 풍경은 7년 전 노 전 의원의 연설 그대로였다. 승객 중 다수는 강남권 사무실에 근무하는 60대 이상 여성 청소노동자들. 대부분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내려 버스를 한 두 번 갈아탄 뒤 오전 5시 30분을 전후해 일터에 도착한다. 아들, 딸 뻘인 사무직 직장인들이 나오기 전 건물을 ‘완벽한’ 상태로 청소해놓기 위해선 모두가 잠 든 한밤 중에 움직여야 한다.

신도림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 2호선 첫 차는 오전 5시 30분이라 6411번 버스는 이 시간 노동자들의 유일한 ‘발’이다. 이 버스를 17년째 운전하는 기사 문재환(50)씨는 “몇 명 타는지는 몰라요. 그저 꽉 찬다는 것만 알죠”라고 말했다.

버스가 운행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좌석 20여 석은 다 채워졌다. 이후 탄 승객들은 준비해 온 방석을 바닥에 깔고 엉덩이를 붙였다. 오전 4시 30분쯤 되자 버스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몸과 몸이 부대끼다 보니 “서로 밀지 말라”는 신경전도 자주 벌어졌다.

[저작권 한국일보] 22일 오전 6411번 첫 차 승객이 엉덩이 깔개를 들어보이고 있다. 승객들은 언제든 버스 바닥에 앉을 수 있게 버스 엉덩이 깔개를 갖고 다닌다. 박진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22일 오전 6411번 첫 차 승객이 엉덩이 깔개를 들어보이고 있다. 승객들은 언제든 버스 바닥에 앉을 수 있게 버스 엉덩이 깔개를 갖고 다닌다. 박진만 기자

사정이 이러니 승객들은 자리에 앉기 위해 새벽부터 20분 이상 걸어 종점까지 거슬러 가기도 한다. 하루 종일 쉼 없이 몸을 놀려야 하는 이들에겐 버스로 이동하는 1시간 안팎이 꿀 같은 휴식이다. 매일 6411번 첫 차를 이용하는 이모(70)씨도 “집 앞에서도 탈 수 있지만 굳이 30분 걸어서 종점까지 가서 탄다”고 말했다.

노 전 의원이 당대표 수락 연설을 하며 6411번 버스 속 사람들을 돌아보자고 외쳤던 게 벌써 7년 전인데, 승객들은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승객은 “노 전 의원 사망 이후 언론이 달려들었지만 그때뿐이었다”며 “서울시가 관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6411번은 여전히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싣고 새벽 길을 달리고, 서울시내에는 이런 버스가 한 두 대가 아니다. 새벽 4시 30분 이전에 좌석이 가득 차는 서울 버스노선은 179개나 된다.

오전 4시 금천구를 출발해 강남으로 가는 8541번도 노 전 의원의 연설처럼 “매일 같은 사람이 타고,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의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는 지난달 새벽 노동자들이 많이 타는 노선 가운데 4개를 추려 첫 차를 두 대로 늘렸다. 146번(상계~강남), 240번(중랑~신사), 504번(광명~남대문), 160번(도봉~온수)이다. 6411번은 기준에 살짝 못 미쳐 증차되지 않았다.

☞아래는 노회찬 전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 연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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