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시대 일본 영광 되찾으려는 아베
만성적 저성장과 인구 감소로 국력 한계
‘대국’ 꿈 접고 중규모 국가로 역할 찾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가 실시된 2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개헌 세력이 개헌 발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고 해서 아베 신조 총리의 야망이 꺾였다고 보면 오산이다.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드는 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는 아베로서는 정계 개편, 나아가 4연임까지라도 해서 숙원을 이루려 할 것이다. 헌법 개정을 이루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일본 최고 권력자로 남을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일본을 다시 찾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재집권한 아베 등 우익 집권세력의 지향점은 ‘대(大)일본주의’다. 자부심과 애국심이 넘치던 메이지 시대 일본의 영광을 되찾자는 것이다. 자위대 합법화 등 군사력을 증강해 일본을 ‘군사대국’ ‘정치대국’으로 만드는 게 그들의 목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대척하는 지역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열망을 숨기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은 이런 전략의 서막이다. 대일본주의 실현의 희생양으로 한국이 적합하다고 본 듯하다. 경제 보복의 수법과 진행 과정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똑 닮았다. 상대 선제 공격, 국제 규범 무시, 안보 논리 동원 등의 행태가 트럼프가 중국에 했던 방식 그대로다. 마치 일본이 미국 같은 ‘대국’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아베가 지향하는 대일본주의는 착각과 억지로 쌓은 모래성이다. 지금 일본이 처한 현실은 대국화 노선이 얼마나 환상인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만성적인 저성장과 인구 감소는 국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징표다. 한때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18%까지 차지하던 일본 경제는 6%로 쪼그라들었다. 저출산ㆍ고령화 심화로 2100년까지 일본 인구는 7,000만명이 감소해 5,000만명만 남는다. 그것도 절반 가까이가 고령층이다. 성장 여력이 사라지고 국력이 쇠퇴하는 나라가 ‘대국’이 된 사례는 인류 역사에 없다.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 추구도 꿈 같은 얘기다.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 중국의 세계 GDP 점유율은 20%(미국은 25%)다. 방위비 규모는 일본이 5조엔 수준이지만 중국은 17조엔으로 세 배가 넘는다.

한국도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한일 간 GDP 차이는 과거 30분의 1이었던 것이 지금은 3분의 1로 좁혀졌다. 군사비는 엇비슷하지만 수년 내에 일본을 추월한다. 여기에 남과 북이 평화 공존과 경제 협력을 이루면 일본을 능가하는 국력에 이르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중국에 밀리고 한국에 치이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이 대일본주의고 경제 보복으로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전 이후 일본은 안전 보장은 미국에 맡기고 ‘경제대국’을 향해 줄달음질쳤다. 하지만 한때 미국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했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버블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에 빠졌다. 이런 현실에 더해 중국, 한국 등 주변국의 부상으로 일본인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고 이는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발호로 이어졌다. 혐한(嫌韓)으로 상징되는 내셔널리즘은 이웃 국가와의 외교적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일본은 대일본주의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파와 군부의 대일본주의에 이끌려 나라의 패망을 가져온 태평양 전쟁의 교훈을 일본은 벌써 잊은 듯하다. 진정한 ‘대국’은 주변국을 지배하고 괴롭히는 게 아니라 공생과 우애를 통해 자연스레 리더국으로서의 지위를 얻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하토아먀 유키오 전 총리는 저서 ‘탈대일본주의’에서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일본의 대국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음이 명확해지고 있다”며 “중규모 국가화의 숙명을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중규모 국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 없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앞장서는 게 지금 일본이 해야 할 일이라는 하토야마의 고언은 깊은 울림을 준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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