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55㎝, 몸무게 43㎏.’
저 여린 몸으로 링 위에서 남성들을 잇따라 제압했다. 스피드와 민첩성, 갈고 닦은 기술로 작은 체구의 한계를 극복했다. 피닉스(불사조)라는 이름답게 딱 달라붙는 불꽃무늬 검은색 바지를 갖춰 입은 여성 전사는 투구도 썼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강철보다 단단한 불평등의 상징으로 흔히 입방에 오르내리는 히잡(hijap)이다.
노르 디아나(19)씨는 세계 최초의 히잡 프로레슬러이자, 말레이시아에 존재하는 여성 프로레슬러 두 명 중 한 명이다. 다른 한 명은 코치이자 동료인 아예즈씨다. 링 위의 투사가 되고 싶다는 10대 시절 꿈을 좇아 2015년 프로레슬링 세계에 입문했다. 몇 달간의 훈련 끝에 정식 데뷔한 그는 히잡을 쓰고 이달 초 말레이시아 프로레슬링 챔피언에 오른 4명의 남자 선수를 연달아 격파하며 정상에 올랐다. 상대를 던지고 눌러 압박하는 그의 정교한 기술에 관중들은 환호했다. 미국의 프로레슬링 단체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가 주관하는 경기처럼 말레이시아프로레슬링협회(MyPW)의 시합도 결과가 정해져 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의 영광은 그가 오래된 장벽을 깨부순 뒤에야 찾아왔다. 국교가 이슬람교인 나라, 인구의 60% 이상이 무슬림인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인 여성이 프로레슬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처한 환경은 링 위에서 맞닥뜨리는 도전자보다 더 잔혹했다.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헐렁한 옷을 입어야 했다. 노르씨는 “많은 사람들이 제가 무슬림이고 히잡을 쓰기 때문에 레슬링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초반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마스크를 썼다. 지난해 패배 이후 그는 마음을 바꿨다.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그는 히잡을 쓰고 다시 링 위에 올랐다. 우려와 달리 관중들은 히잡 프로레슬러에 열광했고,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대리만족을 누렸다.
그의 도전은 남성 위주 무슬림 사회에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여성들을 자극하고 있다. 아예즈씨는 “그가 인기를 얻자 레슬링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문의가 늘었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노르씨가 장벽을 깨부수는 게 가능하다고 증명했으니 자기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레슬링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그는 작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크다.
노르씨는 링 밖에선 수줍고 말수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에는 병원에서 일한다. 레슬링 복장을 갖추면 무시무시한 불사조로 변신한다. 최근 경기에서 우승한 노르씨는 링 위에서 “제가 비록 무슬림이고 히잡을 쓰고 있지만”이라고 입을 연 뒤 이렇게 밝혔다.
“어떤 것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nothing can stop me from doing what I love).”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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