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갈고 그 위에 원하는 고명을 얹는다. 빙수를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아 보인다. 맛집으로 소문난 빙수집과 똑같은 맛은 못 내더라도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망고빙수라면 원하는 만큼 망고를 올릴 수 있고, 팥빙수라면 팥의 단맛을 조정할 수 있을 테니 직접 빙수를 만들어 볼 의의는 충분했다. 기본 중 기본인 팥빙수, 몇 년 전부터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하는 망고 빙수, 흑당의 인기와 함께 올해 대세로 자리잡은 흑당 밀크티 빙수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집에서 ‘간단하게’ 빙수를 만드는 방법은 인터넷의 바다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러 개의 레시피를 참고하되 최대한 단순하게, 입맛 맞춤형 빙수에 도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팥빙수 제빙기라는 기계가 괜히 있는 건 아니었다. 집에서 우유를 얼린 뒤 믹서기에 갈면 빙수 얼음을 흉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우유 얼음은 상온에 두자마자 금세 녹기 시작했다. 영하 25도 냉동고에서 꼬박 12시간을 얼린 보람도 얼음 녹듯 사라졌다. 간단하게 만들려면 얼마든지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수제 빙수를 성공적으로 만들기란 생각보다 험난했다. 아래 소요 시간은 얼음을 얼리는 시간을 제외한 것이다.
▦팥빙수
-재료: 팥, 설탕, 올리고당, 우유, 연유, 아이스크림
-소요 시간: 1시간 이상
팥빙수의 핵심은 팥 고명이다. 마트에 가면 빙수용 통조림 팥을 5,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도 있지만 평소 이 팥이 너무 달다고 생각하던 차, 빙수용 팥부터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팥은 잘 익지 않는다. 4시간을 불린 뒤, 압력 밥솥을 사용해 팥을 익혔다. 팥이 잠길 정도의 물과, 팥 양의 3분의 1 정도 설탕을 넣고 강불에서 10분, 약불에서 10분 그리고 뜸들이기 10분이 지난 결과. 너무나 ‘알맞게’ 익었다. 이 팥을 그냥 주워 먹을 게 아니라면 팥빙수 위에 올릴 빙수 팥으로는 적절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결국 작은 냄비로 옮겨, 적당한 묽기가 될 때까지 끓이고 젓고 으깨기를 반복했다. 보통 팥의 4배 정도의 물을 넣으라는데, 상황에 따라 물을 적절히 부어주면서 끓이면 된다. 평소 덜 단맛을 선호하는 데도 불구하고 설탕 3분의 1로는 단맛이 부족해, 올리고당 한 큰술을 추가했다. 이렇게 추가로 불 앞에서 보낸 시간이 40분. 팥의 당도는 물론 식감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름철 한더위에 팥을 40분 간 저어주고 있는 건 고역이었다. 빙수를 만들고 남은 팥은 냉장 보관 하다가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 먹을 수 있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는다.
팥이 준비됐다면 이제 우유얼음을 만들 차례다. 냉동고에서 꺼낸 우유는 과연 믹서로 갈릴까 싶을 정도로 꽁꽁 얼어 있었지만, 잘 갈렸다. 너무 잘 갈려서 금방 다시 우유로 돌아온다는 게 문제였다. 생 우유 맛에 당황할 수 있지만, 빙수 맛을 좌우하는 건 역시 연유다. 연유를 한 바퀴 휘 돌려 뿌리면 그럴싸한 빙수 맛이 난다. 얼음과 팥, 연유만으로도 맛 내기는 충분하지만 바닐라 맛, 우유 맛 등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얹어 주면 더 훌륭한 고명이 된다.
▦흑당 밀크티 빙수
-재료: 우유, 밀크티 스틱, 즉석 타피오카 펄, 흑당시럽
-소요 시간: 10분
흑당버블티 브랜드인 ‘타이거슈가’로 시작된 흑당 바람은 버블티를 넘어 식료품계를 휩쓸고 있다. 빙수도 마찬가지다. 흑당은 사탕수수 원당을 달여 캐러멜 향이 나도록 한 시럽이다. 흑설탕에 비해 정제 공정을 덜 거쳤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운 단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 버블티는 열대작물 카사바 뿌리에서 채취한 타피오카 녹말로 만든 지름 3~5㎜의 알갱이인 타피오카 펄을 넣어 만든 밀크티다. 흑당 밀크티 빙수에는 흑당과 밀크티와 타피오카 펄이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흑당시럽과 타피오카 펄을 오프라인에서 구하는 건 쉽지 않다. 퇴근 시간 전 서울 종로구 방산시장까지 달려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틀이면 도착하는 온라인 구매가 낫다. 팥을 삶으며 깨달은 점은 여름엔 불을 최대한 쓰지 말자는 것. 밀크티 빙수를 만들 때는 최대한 불을 덜 써보기로 했다. 타피오카 펄은 1시간을 삶고, 설탕 등 단맛이 나는 시럽에 재워야 카페에서 먹는 펄 맛을 낼 수 있는데, 이미 단맛이 배어 있는 채로 판매되는 즉석 펄을 구입하면 이런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이미 삶아진 펄을 다시 냉동시킨 것이라, 뜨거운 물에 넣고 해동만 시켜주면 된다. 뜨거운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서 1분 가열하니 쫀득쫀득한 타피오카 펄이 만들어진다.
밀크티 빙수인 만큼 우유가 아닌 밀크티를 얼렸다. 밀크티도 홍차를 직접 우린 뒤 우유를 넣는 방법과 커피 믹스와 비슷한 밀크티 믹스를 이용해 만드는 방법이 있다. 간단히 만들기 위해 이미 단맛까지 첨가 돼 있는 밀크티 믹스를 사용했다.
밀크티 얼음을 간 뒤, 흑당 시럽을 원하는 만큼 뿌리고 펄을 원하는 만큼 올려주면 역시나 그럴싸한 맛이 난다. 다만 타피오카 펄이 차가운 얼음을 만나니 금세 딱딱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흑당 밀크티 빙수는 기본 재료 구입부터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즉석 펄 500g짜리가 9,900원, 흑당시럽 250g이 8,000원, 밀크티 스틱은 3,000원 정도에 구입 가능하다. 빙수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흑당 버블티를 5분 만에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번 구입하면 20번은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망고빙수
-재료: 우유, 연유, 애플망고, 아이스 망고, 탄산수
-소요 시간: 20분
망고빙수는 열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망고빙수의 핵심은 망고다. 망고빙수로 유명한 호텔에서는 제주산 애플망고를 쓴다는데, 집 앞 마트에서 할인 중인 5,000원짜리 대만 산 애플망고로도 맛있는 망고빙수를 만들 수 있다. 우유 얼음에 연유를 뿌리고 망고를 올리는 것으로 완성하기엔 너무 심심한 듯해 망고퓨레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던 아이스 망고를 꺼내 탄산수를 살짝 넣고 믹서기에 갈았더니, 망고 본연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시원한 망고퓨레가 금방 만들어졌다. 망고를 설탕과 함께 졸이는 방법이나, 온라인에서 망고퓨레를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망고빙수의 성패는 사실 ‘망고 데코레이션’에 달렸다. 망고빙수가 흑당 밀크티 빙수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 이유는 망고를 써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고를 먹음직스럽게 올리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금세 녹아 버리는 얼음에 당황해 망고를 예쁘게 올릴 새도 없었다. 하지만 애플망고는 옳았다. 맛만큼은 여느 빙수 부럽지 않았다.
◇수제빙수 만들기를 한 후…
우유를 한꺼번에 얼린 뒤 세 개의 빙수를 차례로 만들어보고 뒤늦게 깨달은 바는 우유를 그대로 얼리면 원래 빨리 녹는다는 것이다. 우유와 적정량의 물을 섞어 얼려야 언 상태가 조금 더 유지된다. 우유 500㎖에 물 150~200㎖가 적정하다고 한다. 여기에 연유까지 적당히 넣으면 얼음자체에서도 단 맛을 느낄 수 있다. 1인분짜리 빙수를 시도하고 싶다면 우유 200㎖를 사용하길 권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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