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리 구루물 유누핑구(Geoffrey Gurrumul Yunupingu)는 첫 솔로 음반을 낸 2008년 2월부터 유작 음반이 나온 2018년 4월까지 모두 4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호주 원주민 가수다. 그는 영어로 된 일부를 빼면 대부분 따라 부르기도 힘든 다양한 원주민 부족 언어 가사로 노래했고, 약 10년 활동기간 내내 전 세계 수많은 도시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다. 2009년 5월 영국 런던서 가진 첫 콘서트 내내 그가 한 말은, 공연을 끝내고 무대 뒤로 사라지기 전에 했던 “Thank you”라는 두 음절이 전부였다. 말 뿐 아니라 몸짓도 거의 없어, 공연 내내 그가 움직인 건 기타를 쥔 두 손과 성대뿐이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그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앞에서도 늘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불친절한’ 뮤지션이었지만, 또 그래서, 음악에 관한 한 가장 성실한 뮤지션이었다.
2015년 그의 첫 미국 첫 콘서트를 본 저널리스트 겸 비평가 존 파렐스(Jon Pareles)는 그의 목소리에 ‘초월적 위로의 힘’이 있다고 썼다. 그는 “마치 아득한 데서부터 다가오는 듯했다”고, “높고도 맑은, 리드의 떨림 같은 작은 진동과 자장가의 달래는 듯한 멜로디”로 청중을 사로잡았다고 썼다. 사실 그는 일류 비평의 언어조차 (그의) 음악에 닿지 못한다는 말을, 저렇게 안간힘 다해 한 셈이었다. 구루물은 언어와 몸짓, 메시지 너머의 소리의 본질로,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저마다 꿈꾸고 상상하게 했다.
그는 호주 북부 엘초 아일랜드라는 섬 구마츠(Gumatj) 부족 집안에서 시각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났다. 다섯 살 무렵부터 빈 깡통으로 리듬을, 장난감 아코디언으로 가락을 익혔고, 6살 때부터 삼촌의 기타를 독학했다고 한다. 왼손잡이인 그는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뒤집어 연주한, 어쩌면 세계 유일의 기타리스트였다. 의료시설이 없는 원주민 마을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탓에 만성 신장ㆍ간 질환을 앓았다.
그는 만 46년을 살고, 2017년 7월 25일 숨졌다. 고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사진을 쓰지 않는 부족의 금기를 존중, 호주와 영미 언론은 그의 부고 제목에 ‘Dr.G 유누핑구’라 썼다. 2012년 시드디대학서 받은 명예 음악박사 학위에서 따온 ‘Dr’였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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