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타밀(Tamil)인에게 7월은 ‘검은 7월(Black July)’로 통한다. 스리랑카의 타밀인들이 1983년 7월 마지막 주 약 6일 동안 겪은, 제노사이드의 악몽 때문이다. 그들은 촛불을 밝혀 희생자를 추모하고 자치국가 수립의 아득한 꿈을 환기한다.
타밀인은 국가 없는 디아스포라 민족이지만, 한반도 전체 인구와 맞먹는 약 7,500만명이 독자적인 언어(타밀어)와 문화를 지닌 채, 인도 남부를 거점으로 스리랑카 북부와 싱가포르의 동남아시아, 호주와 북미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게 된 데도 ‘검은 7월’의 영향이 컸다.
영국은 인도보다 앞선 1815년 스리랑카(당시 실론) 식민 지배를 시작했다. 그들은 최대 민족인 싱할라(Sinhala)족 통치를 위해 소수민족인 타밀족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대부분 인도 남부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라 전통적인 지배 네트워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다시 말해 식민 통치에 저항감이 덜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타밀인은 2차대전 이후 독립하기까지 약 한 세기 반 동안 스리랑카의 제국주의 권력을 대리한 정치 엘리트였다. 해방 이후 권력을 장악한 싱할라족의 집단의식 속에 타밀인은 한국인이 식민지 친일 관료집단에 대해 지닌 감정과 흡사한 문책적ㆍ징벌적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1956년 법을 개정, 피식민 기간 공용어였던 영어 대신 전체 인구의 75%가 쓰는 ‘싱할라어’를 단일 공용어로 선포했다. 북부와 동부의 타밀인(약 25%)은 저항했다. 좌파의 저항이 특히 거셌다. 좌파 무장 반군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는 소비에트의 지원을 업고 자치 독립을 주장하며 1976년 출범, 스리랑카 북동부를 거점으로 2009년까지 활동했다.
1983년 7월 24일, LTTE가 북부 자프나(Jaffna) 인근 지역을 순찰하던 스리랑카군을 매복 공격해 13명을 사살했다. 숨진 군인들의 시신이 언론에 공개되자 싱할라족 시민들은 24일부터 6일간 수도 콜롬보를 비롯한 스리랑카 거의 전 지역에서 타밀족이란 이유만으로 살해하고 폭행하고 강간했다. 피가 피를 부른 그 집단 광기를, 공권력은 사실상 묵인 방조 동조했다. 최대 3,000명이 살해됐고, 2만5,000여명이 다쳤고, 8,000여채의 집과 5,000여곳의 사업장이 파괴됐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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