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7월 23일 레이먼드 챈들러가 태어났다.

범죄스릴러 작가 제임스 엘로이(1948~)는 ‘L.A 컨피덴셜’을 비롯한 자신의 L.A 4부작을 “미국의 숨겨진 역사”라 자평했다. 2006년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소설가(novelist)라 여기느냐, 범죄작가(crime writer)라 여기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픽션의 대가(master)다. 동시에 역대 가장 위대한 범죄소설가다. 범죄소설에 관한 한 나는 러시아문학의 톨스토이, 음악의 베토벤 같은 존재다.” 그는 작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그가 구축하고자 하는 자신의 이미지의 욕망을 그렇게 드러냈다. 그의 자긍심은 언제나 섬뜩하리만치 호전적이고, 그걸 떠받치고 있을 자신감도 늘, 적어도 겉으로는 요지부동이다.

그는 원했든 않았든, 제 문학의 꽤 굵은 뿌리를 얽어온 하드보일드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를 콕 집어 폄하한 적이 있다. “챈들러는 미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과대평가된 작가다. 치와와 X나 빠는 자일 뿐이다.” 그는 주인공 필립 말로의 과장된 우울과 허세를, 저변의 나르시시즘을 그렇게 모욕했다. 명성에 쉽게 조아리는 비평가들, 나이브한 작가들, 감상적인 독자들에 대한 짜증과 분노도 함께 버무린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실 해밋은 좀 낫다. 그는 자기가 그리 될까 걱정스러운 존재를 주인공으로 썼고, 챈들러는 자기가 되고 싶은 존재를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데뷔한 1980년대와 챈들러가 활동한 펄프픽션 시대의 맥락을 놓쳤거나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그는 세상이 동의하든 않든, 장르소설가인 자신을 톨스토이나 베토벤과 나란히 둘 수 있는 시대를 누려왔고, 챈들러는 어쨌거나 ‘싸구려 작가’였다. 엘로이에 버금가게 불우했지만 부자 삼촌 덕에 영국에서 공부한 챈들러는 셰익스피어를 전범 삼아 습작한 이력이 있는 작가였다. 그의 시대는 그에게 자긍심을 흔쾌히 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문학 안팎에서 우울과 나르시시즘으로 분열했다. 말년의 챈들러는 “어떤 세대에도 미완의 작가는 존재한다. 종이에 자신의 전부를 온전히 옮겨 담지 못하는 이들, 나도 그들 중 한 명일지 모른다”고 썼다. ‘톨스토이급’ 엘로이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주장일지 모르겠다.

최윤필 선임기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