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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공정한 차별은 없다

입력
2019.07.21 18:30
수정
2019.07.21 20:5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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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서, 조리사, 교무행정사, 방과후 전문교사 등 학교 내 여러 비정규 노동자들이 뭉친 민주노총 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가 최근 2차 총파업을 예고했다. 기본급 6.24% 인상을 비롯 각종 수당을 올려 달라는 요구에 대해 교육당국이 기본급 1.8% 인상 외엔 수용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70여개에 달하는 학교 비정규직들의 사정을 보자. 2011년 노조를 조직한 뒤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올해까지 5차례 파업을 벌이며 힘을 키웠다. 학교를 포함한 공공분야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보수정권부터 추진된 과제였지만,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변화의 촉매제가 됐다. 이후 25개 직종은 고용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으로 바뀌었다. 고용불안이 해소되긴 했지만 허울뿐인 정규직이 됐다며 9급 공무원의 80% 수준으로 임금을 맞춰달라는 게 요즘 이들의 요구다.

이런 요구가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잘못됐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장기 근속한 학교 비정규직 가운데에는 비록 소수지만 초급 공무원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경제적 수준을 향상시켜 달라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신분 차별을 철폐해달라는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이 왜 교육공무직이라는 별도 직제를 만들어 법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확보해달라는 목소리를 내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따르면 학교 현장에서 인격모독이나 업무배제는 비일비재하다. 학비노조가 지난달 조합원 385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상사에게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었다는 응답이 41.4%, 자신만 엄격한 기준에 따라 감독을 받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다는 응답이 44.6%, 교직원 회의에서 배제했다는 응답이 56.3%였다. ‘교사가 아닌데 왜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느냐’는 다그침을 당하거나, ‘저기요’ ‘어이~ 자네’ 같은 호칭으로 불린다는 증언도 있다. 전 교직 인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남용된다는 점만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 현장을 신분사회로 갈라놓고 있다는 점이 학교 비정규직의 진짜 문제라는 얘기다.

상황은 이렇지만 이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이달초 이들이 파업을 하자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는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당당하고 떳떳하게 시험을 보고 권리를 주장하라’, ‘교육공무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들을 생각하라’며 무임승차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해주는 일까지는 몰라도 공무원과 같은, 혹은 ‘비슷한’ 처우를 해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게 이들 생각의 저류에 흐르고 있다.

이 주장은 얼핏 호소력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점투성이다.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대원칙은 직무의 가치여야 하지 입직(入職)의 경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쟁률이 높은 시험을 잘 보는 능력과 공무원 직무능력의 연관성도 증명된 바가 없다.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이 향상된다고 해서 정규직들의 근로조건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낮다.(그나마 이들의 요구사항도 정규직의 80%다.)

일상 속 차별문제를 탐구한 근간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구체적인 사안은 들여다봐야 한다”면서도 “다수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위협받을 때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불공정에 대한 사회적 감각은 매우 주관적이고, (정규직이) 진입장벽을 높이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 장벽 안에서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불안감 때문”(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이라는 분석도 있다. 공정한 차별은 없다. 역차별을 주장하면서 차별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노력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편견과 싸우며 정당한 노동권을 행사하려는 이들을 지지하는 일이 더 가치 있다.

이왕구 정책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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