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하반기 사장단 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고객, 임직원, 협력업체, 사회공동체로부터 우리가 ‘좋은 일 하는 기업’이라는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21일 롯데지주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6일부터 20일까지 닷새간 펼쳐진 하반기 사장단 회의(VCMㆍValue Creation Meeting)를 마무리하며 이 같이 강조했다. 이번 회의는 첫날 식품 부문을 시작으로 17~19일 유통, 화학, 호텔에 이어 마지막 날인 20일 사업군별로 논의된 내용을 그룹 전반에 공유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일본 정부의 무역 보복에 관해 신 회장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일 관계에 따른 부담 때문에 회의 참석자들이 극도로 말을 조심하고 있을 뿐 신 회장이 비공식 자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일본과 투자, 제휴 관계에 있는 계열사 고위 임원들과 대응책을 논의했을 거란 시각이 다수다. 신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 앞서 지난 5~15일 일본을 직접 방문해 롯데와 거래하는 현지 금융권 고위 관계자와 관ㆍ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왔다.

롯데는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진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 기업과의 합작사가 많아 양국 간 갈등이 길어지면 롯데에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테면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과 롯데쇼핑이 각각 지분 51%, 49%를 보유한 합작사다. 생활용품 브랜드 무지(MUJI)를 운영하는 무인양품도 일본 양품계획과 롯데상사가 각각 60%, 40% 지분을 갖고 있다. 일본 대표 맥주 브랜드인 아사히의 국내 수입유통 업체인 롯데아사히주류도 일본 아사히그룹홀딩스와 롯데칠성음료가 지분을 절반씩 가지고 있다.

신 회장이 ‘공감’을 화두에 올린 것도 한일 관계가 점차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롯데에 ‘친일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한 ‘사회적 책임’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은 이번 VCM에서 “수많은 제품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기에 특징 없는 상품은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좋은 일 하는 기업’이라는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것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며 “매출 극대화 등 정량적 목표 설정이 오히려 그룹의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회장은 롯데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리먼사태 등을 기회 삼아 더 큰 성장을 이뤄왔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VCM에 모인 대표이사들을 격려했다. 만약 한일 관계 악화로 롯데가 위기를 맞게 되더라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한편 롯데와 일본의 합작사인 에프알엘코리아의 배우진 대표가 최근 추가 사과를 언급한 것도 한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의 오카자키 다케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한국의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고 발언한 데 대해 에프알엘코리아 측은 17일 “본사 임원 발언으로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본사가 아닌 자회사 에프알엘코리아를 통한 사과라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VCM에 참석한 배 대표는 20일 회의 종료 후 취재진에게 “(사과가) 부족한 부분을 느끼고 있다. 추가로 검토해 고객에게 (사과문을) 발표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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