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원전시리즈’ 펴낸 김동훈 박사
서양 근대 미학의 기원을 정리한 ‘미학 원전 시리즈’의 저자 김동훈 박사는 미학은 삶의 의미와 본질을 찾게 해주는 길잡이라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10년 전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한 노숙인이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동료 노숙인과 빈 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었다. 작은 병실 안, 눈 앞에 보이는 건 미술사 책에 담긴 도판 한 장이었지만 그는 마치 유럽의 어느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듯 진지한 표정이었다.

“배에 복수가 차서 정신을 잃는 와중에도 고흐의 자화상이 있는 페이지를 펼쳐 달라더니 한참 바라 보다가 눈을 감더라고요. 그 형님 인생의 마지막 동반자는 빈센트 반 고흐였죠.” 두 사람은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의 인문학 학교로,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운영을 지원한다.

두 사람을 가르친 스승은 김동훈 박사다. 서울대와 홍익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학(美學) 강의를 해오던 그는 2007년부터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예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김 박사는 “그 노숙인은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마지막으로 반추했을 것”이라며 “미학은 추상적 학문이 아니라 삶의 근원을 찾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미학은 아름다움과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듣기만 해도 낯설고 어렵다. 평소 예술 작품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은데 그걸 성찰하는 학문이라니 더 생경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김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미학은 누구의 마음 속에나 자리하고 있다고 믿는다. 내면에 품고 있는 미적 감각과 경험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바로 미학이란 설명이다.

그가 최근 서양 근대 미학의 기원을 정리하는 ‘미학 원전 시리즈(마티)’를 시작한 배경도 미학의 가치를 일반 대중들에게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미학은 학계에서도 보편적이지 않은 학문 분야다. 연구 인력이 적다 보니 원전 연구도 미흡했다. 김 박사는 “미학 연구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리즈는 18세기부터 태동한 근대 미학 초기에 발표된 굵직한 저작들을 번역했다. 1차분으로 3권이 번역됐고 내년 상반기 즈음 3권을 더 낼 예정이다. 시리즈의 포문을 연 1권은 미학이란 학문을 처음으로 고안해 낸 독일 철학자 알렉산더 고틀리프 바움가르텐(1714~1762)의 ‘미학’ 일반론 부분을 발췌해 번역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텍스트다. 분량이 방대하고 라틴어로 쓰여 있어 아직 영어로도 완역되지 않았다. 그만큼 번역이 쉽지 않은 저작이다. 독일 유학 시절 희랍어, 라틴어 자격증까지 딴 김 박사도 9개월이나 매달렸을 정도로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이 밖에도 시리즈 1차분으로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데이비드 흄(1711~1776)의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비극에 대하여 외’도 함께 발간됐다. 특히 흄의 논문들은 아름다움을 ‘비례, 균형, 조화’라는 속성으로 규정한 전통적 견해를 뒤집고 ‘인간 내면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변화’라고 선언하면서 미학 연구의 판도를 뒤흔든 저작이다. 실제 현대 미학에선 수용자, 즉 감상자의 평가가 중시되고 있다. 김 박사는 “영화와 같은 대중예술 아닌 고급예술에서도 ‘시대적 감수성’은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개개인이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과 취향이 여느 평론가의 말 한마디보다 중요해진 시대. 예술과 아름다움의 보편적 기준을 제시해주는 미학은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그는 “위대한 소설가의 작품과 삼류 하이틴 로맨스 소설은 비교하지 않는 것처럼 시대를 관통해 인정 받는 예술 작품은 분명 존재한다”고 단언했다.

아름다움과 예술을 보는 눈도 키울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예술 작품을 볼 때 편견을 버리면 훨씬 더 다양한 미적 경험에 다가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절대 음감처럼 감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있죠. 하지만 감각도 연습하고 훈련하면 늡니다. 어렵다 주저하지 말고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세요. 예술과 아름다움에서 삶의 근원을 찾게 될 겁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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