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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 미술관 극장에선 특별한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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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 미술관 극장에선 특별한 향기가 난다

입력
2019.07.22 04:40
수정
2019.07.23 16:2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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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천동 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인 ‘서울책보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철제 서가와 대나무 등에서 추출한 향이 어우러져 마치 대나무 숲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울책보고 제공
서울 신천동 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인 ‘서울책보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철제 서가와 대나무 등에서 추출한 향이 어우러져 마치 대나무 숲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울책보고 제공

#서울 신천동 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인 ‘서울책보고’ 에 들어서면 마치 대나무 숲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책 13만여 권이 빼곡하게 꽂힌 철제 서가가 숲처럼 우거져 시선을 사로잡고, 대나무와 난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책보고원’ 향이 코 끝을 스치기 때문이다.

#소장품 기획전을 진행 중인 경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 전시된 노정란 작가의 추상화 ‘색놀이-북한산과 캘리포니아 해변’. 이 그림 앞에 서면 마치 바다와 모래사장 풍경이 펼쳐지는 듯하다. 노랑과 파랑 등 강렬한 색상을 쓴 작품과 함께 청량한 시트러스 향이 후각을 일깨운 덕이다.

◇그림 앞에 서니 코끝에…

경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소장품 전시에 나온 노정란 작가의 추상화 ‘색놀이-북한산과 캘리포니아 해변’. 작품 옆에 그림과 어울리는 향이 든 디퓨저가 놓여 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제공
경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소장품 전시에 나온 노정란 작가의 추상화 ‘색놀이-북한산과 캘리포니아 해변’. 작품 옆에 그림과 어울리는 향이 든 디퓨저가 놓여 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제공

보이는 데 주력해온 공간들이 보이지 않는 향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고 있다. 요즘 각광받는 공간에선 그래서 특별한 향이 난다. 관객과 소비자에게 후각을 통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은아 공간기획자는 “공간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요소 중 후각이 75%를 차지한다”며 “과거에는 향이 일상의 냄새를 차단하는 역할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공간에 맞는 향을 사용하고, 나아가 특정 공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후각을 자극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간과 어울리는 향은 공간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국내 대형서점 교보문고엔 특유의 ‘책 향(The scent of page)’이 있다. 으레 종이 냄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향업체와 수십 차례 향의 배합비율과 강약을 조절한 끝에 만들어진 향이다. 시트러스, 피톤치드, 천연 소나무 오일, 로즈마리 등을 배합해 울창한 나무 숲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낸다. 고객이 매장에서 편안하게 책을 보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지난해부턴 양초와 디퓨저(발향제), 종이 방향제로 이 향을 담아 팔기 시작했다. 향이 좋다는 반응이 많아서다. 이 제품들의 월 매출은 평균 1억원에 이른다.

대형 영화상영관인 메가박스도 자체 향을 개발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프리미엄 영화관인 ‘메가박스 더 부티크’ 5곳에서 사용된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과 묵직한 나무 향을 섞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쾌적한 영화 관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개발했다”며 “관객들로부터 고급스럽고 대접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억은 향기로 박제된다

프리미엄 영화관 ‘메가박스 더 부티크’에도 특유의 향기가 있다. 관객들이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도록 자체 향을 제작했다. 메가박스 제공
프리미엄 영화관 ‘메가박스 더 부티크’에도 특유의 향기가 있다. 관객들이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도록 자체 향을 제작했다. 메가박스 제공
호텔, 예식장 등 상업공간에서도 자체 향을 개발해 양초, 향수, 디퓨저 등으로 만들어 내놓고 있다. 서울 5성급 호텔 포시즌스호텔의 양초(맨 왼쪽부터), 레스케이프의 향수, 예식장 아펠가모의 디퓨저. 각 업체 제공.
호텔, 예식장 등 상업공간에서도 자체 향을 개발해 양초, 향수, 디퓨저 등으로 만들어 내놓고 있다. 서울 5성급 호텔 포시즌스호텔의 양초(맨 왼쪽부터), 레스케이프의 향수, 예식장 아펠가모의 디퓨저. 각 업체 제공.

공간의 향기는 기억과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도 있다. 서울 시내 5성급 호텔인 포시즌스호텔은 전통 한옥에 사용되는 소나무, 단향목 등에서 추출한 향을 로비와 객실에 사용한다. 해외에서 온 관광객이 집에 돌아가서도 한국을 기억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다. 레스케이프 호텔 로비의 장미향도 유명하다. 명품 향수 조향사인 알리에노르 마스네가 제작했다. 마치 장미꽃밭에 온 듯 풍성하고, 화려한 향이다. 이 호텔 관계자는 “다른 곳에서 장미향을 맡아도 호텔이 떠오를 정도로, 후각은 공간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웨딩기업 아펠가모는 최근 예식장에서 사용하는 고유의 향을 디퓨저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결혼을 한 신혼부부에게 예식 100일 후 이것을 선물로 제공한다. 은방울꽃 등을 활용해 결혼식 당일의 기쁨과 설렘을 향으로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향에 신경을 쓴 공간이 확산하는 배경으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소비 경향을 들었다. 또 남들과 다른 소비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도 이유로 꼽는다.

조향사인 임향미 페일블루닷 대표는 “엄마가 해줬던 집 밥 냄새를 기억하는 것처럼 후각은 개인의 경험과 굉장히 밀접한 감각기관”이라며 “과거에는 먹고 살기 바빠서 주목 받지 못했지만 경제 수준이 높아질수록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체로 후각의 역할이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20일 미술관 관객들이 미술 작품에 맞게 조향한 향을 시향해보는 향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제공
경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20일 미술관 관객들이 미술 작품에 맞게 조향한 향을 시향해보는 향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제공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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