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여울져가는 저 세월 속에, 좋아하는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
태풍과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장대비가 내린 20일 오후 2시 경북 문경시 영강체육공원 야외특설무대. 서울의 직장인으로 구성된 5인조 대일밴드가 가수 나미의 1980년대 히트곡인 ‘빙글빙글’을 연주했다. 보컬이 목청을 한껏 높이자 관객과 경쟁 팀 모두 한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또 다른 한 연주자는 공연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의 열정 앞에 태풍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함성을 질렀고, 무대 아래에선 박수가 터졌다. 이날 무대는 악천후로 간이 천막과 비닐로 설치됐고, 우비나 우산을 쓴 500여명의 관객은 객석에서 무대와 하나가 됐다.
5호 태풍 ‘다나스’도 그들을 막진 못했다. 20, 21일 이틀간 경북 문경시 영강체육공원 야외특설무대에서 열린 ‘2019 문경 전국직장인락밴드 경연대회’ 참가자들의 연주는 악천우에도 이어졌다. 대회장은 전국에서 온 40개 직장인밴드 200여명이 쏟아내는 전자기타와 드럼, 록밴드 특유의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직장인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올해 처음 개최된 이번 행사엔 전국에서 52개 직장인밴드가 지원했다. 1차로 서류, 음원 심사를 통과한 40개팀이 20일 예선 무대에 올랐고 이중 10개팀이 21일 본선에서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였다.
참가팀들은 이날 기성곡과 자작곡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공연을 선보였다. 헤비메탈, 소프트메탈, 록발라드 등 각종 장르의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화이트노이즈는 건즈앤노이즈의 ‘You could be mine’, 데이플라이는 넥스트의 ‘라젠카 세이브어스’, 더미씽링크는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 렌탈지하는 이문세의 ‘붉은 노을’, 밴드TRAP은 직접 만든 자작곡을 선보였다. 20일 저녁 개막식엔 윤수일밴드와 호란, 나건필, 문경 출신 가수 선경 등 초청가수 공연 등도 펼쳐졌다.
참가팀의 사연도 다양했다. 겜블러는 활동하면서 적자 전환된 회비잔고를 상금으로 메우기 위해 참가했고, GOSURA와 라온제나팀은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밴드 음악으로 날려보내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충북 제천 덕산의 농민들로 구성된 어리산밴드의 경우엔 열악한 농촌의 문화 환경에서도 1970, 80년대 강렬한 밴드 음악을 동경해 열정 하나로 뭉쳤다. 해당 지역 인근에서 이들은 이미 ‘덕산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는 귀띔이다.
21일 오후 9시까지 계속된 대회 결과 경기 수원에서 온 5인조 크루세이드가 아이언 메이든의 ‘The Tropper’를 연주해 대상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직장인밴드들은 예선에서는 1곡, 본선에서는 2곡을 불렀고 심사는 대학교수와 음악 프로듀서 등으로 구성된 5명의 심사위원이 맡았다. 최고, 최저점수를 제외한 중간 3인의 점수를 평균 합산해 최종 순위를 판가름하는 방식으로 수상자가 결정됐다.
수도권 지역에서 결성된 직장인밴드 MOB 리더 서보원(34)씨는 “대회 출전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한 달 전부터 맹연습을 했다”며 “참가팀 모두 아마추어 밴드인데도 생각보다 실력이 뛰어나 놀랐고, 큰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같은 팀 베이스 이선표(17)군은 “예선 무대에서 몇 차례 실수를 해 아쉽다”며 “내년 대회에도 꼭 참가해 더 나은 실력을 보여 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전국 5개 수제 맥주 브루어리의 맥주를 시음하는 이벤트도 곁들인 이번 대회에는 지역 소상공인들이 50여 부스에서 먹거리 판매와 부채 그리기, 페이스페인팅, 버블쇼, 맥주 만들기, 전통 발물레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행사도 펼쳤다.
최정현 문경시 문화예술팀장은 “태풍이 오히려 전국 직장인밴드의 열정과 실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여름 대표 축제로 키워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문경=글·사진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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