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김 대표 영장 기각으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사법처리 동력을 상당 부분 잃은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소환 여부도 다시 고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김 대표와 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모 전무, 재경팀장 A 전무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9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그는 이후 장시간 사건 관련 증거 관계를 살핀 끝에 20일 새벽 김 대표 등에 대한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명 부장판사는 “주요 범죄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혐의와 상반되는) 증거도 수집돼 있다”며 “주거 및 가족관계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김 대표 등이 실질심사에서 “당시 회계 절차에 맞춰 진행한 것으로, 횡령 등 범죄의 고의성도 없었다”며 관련 회계 기록과 자사주 매입 과정 등을 꼼꼼히 제출한 전략이 효과를 거둔 셈이다.
김 대표 등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본안인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된 삼성 측과 회계법인 관계자들의 진술에, 김 대표의 횡령 혐의 관련 증거까지 제출하는 등 최선을 다한 뒤 나온 예상 밖의 결과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김태한 구속’이라는 이 부회장 소환을 위한 중요 전제가 이날 성립되지 않아 더욱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의 중대성, 객관적 자료 등에 의한 입증의 정도, 임직원 8명이 구속될 정도로 이미 현실화된 증거인멸, 회계법인 등 관련자들과의 허위진술 공모 등에 비춰 구속영장 기각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추가 수사 후 구속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횡령,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김 대표 등에 대한 영장을 청구했다.
김 대표 등은 2015년 말 자회사 회계 처리 기준을 변경해 장부상 회사 가치를 4조5,000억원 늘린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으로 인한 부채 1조8,000억원을 재무제표에 반영할 경우 자본잠식에 빠질 것을 우려해 회계처리 기준을 부당하게 변경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김 대표가 주식매입 비용 가운데 약 30억원을 보전 받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횡령한 것으로도 영장에 적시했다.
지난해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삼성전자 재경팀 이모 부사장 등 8명을 증거인멸 관련 혐의로 구속했다. 하지만 증거인멸이 아닌 분식회계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 대표는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의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됐다. 이후 검찰은 김 대표를 수 차례 소환해 분식회계의 의사결정 과정 등을 조사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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