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숙행이 ‘연애의 맛2’에 합류 한지 한 달이 지났다. ‘미스트롯’이 낳은 트로트 스타답게 새 커플을 향한 반응은 꽤나 뜨겁지만, ‘연애의 맛2’에 출연 중인 숙행의 모습은 어딘가 씁쓸하다.
TV CHOSUN ‘연애의 맛’(이하 ‘연맛’) 시리즈는 지난해 첫 방송을 시작했던 시즌1부터 줄기차게 ‘중년남 로맨스’ 판타지에 대한 비판 여론을 형성해왔다. 최근 사회적으로 ‘젠더이슈’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40대 노총각 남성 출연자와 미모의 20대 여성 출연자의 소개팅은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도 ‘연맛’ 제작진은 시즌2 역시 시즌1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출연자 나이 설정을 고수했다.
과거 ‘연맛’ 서혜진 CP는 한 인터뷰를 통해 출연자들의 높은 나이차 설정의 이유로 “연예인들의 감수성은 실제 나이에 비해 순수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선 대화가 서로 통해야 했다. 그들의 나이를 숫자로 계산해서 생각 했다기보다 예술가적 면모를 지닌 사람들의 순수성을 먼저 이해해야 했기에 (남녀 출연자들의) 나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작진이 일련의 의도를 가지고 이 같은 나이차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기자는 ‘연맛’ 측이 이 같은 남녀 출연자들의 나이차를 구성하는 기준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으나, 당시 TV CHOSUN 측 관계자는 “사전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이상형을 조사한 뒤 섭외에 참고할 뿐, 나이에 대해서는 다른 의도를 전혀 갖지 않고 있다”는 답만을 전한 뒤 관련한 추가 대답을 피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맛2’ 측은 새 출연자로 숙행을 투입시켰다. 장우혁, 오창석, 고주원, 천명훈 등 30대 후반~40대 남성 출연자들만 고정 출연 중이던 ‘연맛’에 숙행의 합류는 분명 새 바람이었다.
그런데 조금 들여다보자니 어딘가 이상하다. 1979년생인 숙행은 올해 41세다. 여기까지는 현재 ‘연맛2’에 출연 중인 남성 출연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숙행과 소개팅을 한 상대인 이종현 씨의 나이는 나머지 네 커플과 사뭇 다르다. 소개팅 상대로 출연한 여성 출연자들이 대부분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나이였던 것과는 달리 이종현 씨의 나이는 숙행과 1살 차이인 40세였던 것이다. 앞서 서 CP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연예인들의 순수한 감수성”을 감안하자면 숙행의 소개팅 상대 역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하남인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상황이건만, 감수성의 기준은 남성 출연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혹자는 여성 출연자의 경우 결혼을 위해 상대방을 만나는 상황에서 띠동갑에 달하는 연하의 소개팅 남을 매치 시켜주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이야말로 ‘편견’이 아닐까. ‘자신의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은 40대의 남성’은 띠동갑을 훌쩍 넘는 여성과 결혼을 전제로 소개팅이 가능한 것처럼, 같은 조건의 ‘여성’ 역시 띠동갑의 연하 남과 결혼을 전제로 하는 소개팅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선택은 본인에게 달렸지만, 적어도 ‘연맛2’ 상대 선정에 있어 숙행이 특정 나이대를 거절 혹은 추천했을 리는 없어 보인다. 앞서 TV CHOSUN 측은 “출연자가 사전에 밝히는 이상형의 조건에 상대의 연령대도 포함될 수 있냐”는 본지의 질문에 “일반적으로 이상형을 말할 때 구체적인 나이대를 말하진 않는다”고 답한 바 있다.
숙행-이종현 커플의 분량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 5월 시즌2가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약 2개월이 지나며 기존 출연자들에 대한 신선도가 다소 떨어진 상황에서 합류한 숙행 커플은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연애 진척 상황이 자리 잡은 다른 커플과 달리 ‘썸’ 초반의 풋풋함을 전하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한 애정 어린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반응이 뜨거운 만큼 ‘숙행 커플의 분량 역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겠거니’ 했건만, 웬걸? 오히려 시청자들은 숙행의 분량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실제 숙행과 이종현은 타 커플들에 비해 다소 적은 분량으로 빠른 ‘썸’ 진도를 이어가지 못하며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는 올해 초 종영했던 ‘연맛1’ 여성 출연자였던 정영주의 케이스와 상당히 닮아있다. 지난 해 12월 말 ‘연맛’에 중간 합류했던 정영주는 연하의 소개팅 상대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화제 속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았다. 당시 정영주의 소개팅 상대는 10살 연하의 소방관 김성원 씨로, 숙행에 비해 나이차에 있어서는 양호한 편이었지만 ‘짠내 나는 분량은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메인 커플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분량으로 첫 만남 이후 좀처럼 방송을 통해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못했다. 심지어 그마저도 투입 약 한 달만인 지난 1월 24일 이후 방송되지 않으며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이에 대해 김성원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1월 촬영을 마쳤지만 다른 촬영 분으로 인해 계속해 방송이 밀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압권은 다음 달인 2월 ‘연맛1’이 갑작스러운 종영을 결정한 것이었다. 적은 분량 탓에 식사와 차를 마시는 모습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보여주지도 못했던 두 사람은 등 떠밀리듯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결국 정영주-김성원 커플의 마지막에는 끝맺음도,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초유의 사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작진은 ‘연맛’ 시즌2 론칭을 예고하며 시즌1 출연자 가운데 고주원-김보미 커플만 새 시즌에 계속 출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청자 반응으로도, 서사로도 시즌2 출연이 가장 설득력 있었던 정영주-김성원은 끝내 시즌1을 마지막으로 최종 하차했다.
‘연맛’이 두 시즌 모두 여성 출연자들을 중간 투입시킨 이유가 남성 출연자들과 소개팅 상대의 나이차 등을 둘러싼 시청자들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눈 가리기 식’ 방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건 이 때문이다.
‘영포티’ 로맨스 판타지를 향한 비판을 상쇄시키고자 여성 출연자들을 투입했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꽤 나이차가 나는 연하의 결혼 상대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뿌리 깊은 편견을 미처 지우지 못한 시대착오적 섭외와,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는 남성 출연자 에피소드가 우선시 된 탓에 뒷전이 된 여성 출연자들의 적은 분량이 또 다른 ‘불편함’을 자아내고 있다. 작금의 사태를 토대로 세워본 가설이다. 부디 이 가설이 진실이 아니길 바란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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