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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외국어 잘 배우고 싶어 특목고 갔더니, 그냥 입시학원이더라”

입력
2019.07.23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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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교육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신동준 기자/2019-07-22(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신동준 기자/2019-07-22(한국일보)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날, 단식을 선언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난 밥 먹을 자격이 없어.” 성적표에는 항상 점수와 등수가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시험 문제의 난이도를 탓할 틈도 없이, 운을 탓할 새도 없이, 노력에 대한 평가는 등수를 통해 1초만에 끝났습니다. 3년간의 생활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그 경쟁 의식만큼은 졸업하기 어렵습니다. 옆 친구와 비교하는 버릇이 이미 깊게 체화됐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무한경쟁사회’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표현이 아무리 지겹고 진부해졌어도, 실체는 여전히 굳건합니다. 최근 자사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채 안된 밀레니얼 세대의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와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를 비롯한 한국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전합니다.

 ◇“특성화된 교육이 특권화된 교육으로 변질됐어” 

판다= 나는 외국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특목고에 진학했어. 어렸을 때부터 해외의 사회 문제를 공부하고 싶었어. 그러려면 언어적 능력을 키워야 했고, 영어뿐만 아니라 제2외국어까지 배우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 중학교 때까지는 부모님께서 수학을 엄청 강조하셔서 언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거든. 그래서 외고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어. 입학하고 보니, 물론 외국어를 배운다는 장점은 있었는데, ‘입시형 외국어’를 학습하게 되더라. 학교가 그냥 대형 학원 같았어. 선생님은 학생들이 왜 이 고등학교에 들어왔는지 관심이 없었어. “너는 왜 외국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니”가 아니라 “너는 왜 시험 성적이 이정도 밖에 안되니”라고 물어. 그러니까 학생들이 그 선생님의 교육관에 맞춰 공부하게 되더라고. 대학이 가장 큰 목표가 아니었던 애들도 입시 공부를 최우선으로 두게 된 거지.

강냉이= 나도 특목고에 진학한 첫 번째 이유가 외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였어. 어릴 때부터 외국사람과 의사소통을 잘 하고 싶었거든. 근데 학교 수업은 바깥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외국어와 외국 문화를 배우는 수업 시수는 줄어들었어. 반대로 대학 진학을 위한 교과 내신 압박만 심해졌지. 입시 상담을 받으러 갔더니, 내신 성적이 안 좋다고 일반고로 전학 가라는 말도 들었어. 2학년 1학기 때였는데, 입시 상담가가 이 성적으로는 대학 못 간다며 엄청 큰일 났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 내 흥미와 적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이야.

표정부자= 특목고와 자사고가 학생의 학업적 특수성을 존중하는 방안이라는 말에 동의하긴 해. 일반고가 제공하는 공교육에서는 제2외국어로 비인기 외국어를 가르쳐주지 않잖아. 외국어를 배우고 싶으면, 외국어 고등학교 같은 사립 특목고로 가게 되는 거지. 문제는 특목고의 ‘특성화된 교육’이 ‘특권화된 교육’으로 변질됐다는 거야. 교육이 계급화되고 있어. 특목고가 제공하는 교육의 질은 모두가 누리고 싶어해. 근데 점수와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갈 수 있잖아. 사회경제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특목고에 가게 돼. 특성화 교육의 수요를 만족시킨다는 설립 취지와 맞지 않게 됐어. 이런 특목고는 폐지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카페인= 이미 입학 과정에서부터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게 드러나. 내가 고입을 준비하던 시기에 외고 인기학과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순이었어. 인기순으로 지원하면서도 합격을 목표로 한 전략적 눈치싸움이 벌어졌어. 성적이 합격 안정권에 들지 못하는 경우 일부러 경쟁률이 낮은 과에 지원하는 거지. 과를 결정하는 기준이 내가 관심 있는 언어가 아닌 학과 커트라인인 거야. 한편으로는 보편교육에 해당하는 고등학교 입시까지 이렇게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나 씁쓸하더라고.

 ◇변화하는 교육 정책, 변화하지 않는 ‘입시 교육’ 

판다= 지금은 ‘자사고 논란’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항상 되풀이되는 교육관의 문제 같아. 2011년에는 외고 입학 전형이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바뀌며 영어 내신, 자소서, 입학사정관 면접만 보고 외고에 입학했거든. 근데 입학 전형은 바뀌어도,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명문대 가기 입시경쟁’은 굳건히 유지 됐어. 내가 1학년 때 3학년들이 하던 말이 “2학년은 꺼져가는 불씨, 1학년은 꺼진 불씨”라고 표현하는 거야. 1, 2학년은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따로 보지 않고, 중학교 성적과 외국어 성적으로 입학했거든. 당시 3학년들은 입시 성적이 엄청 잘 나와서 자기 도취된 상태였고, 그때 학교가 정말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입시학원이라는 걸 느꼈어. 선생님들조차도 학생들 중학교 생활기록부에서 내신과 교내 활동이 특출한 학생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했어.

강냉이=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입학사정관제가 본격 도입됐어. 담임선생님이 생활기록부에 적는 학생 평가 내용이 중요해졌지. 근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쓸지 생각해와”라고 하셨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써주겠다는 거였어. 교사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과장과 허위로 작성된 내용이 학생 선발의 기준이 되는 거야. 또 학교에서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어떤 어려운 책을 읽고 소논문을 써오라 한 적도 있어. 소논문은 태어나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고, 일단 책이 난해해서 이해도 안됐어. 결국 부모님께서 대신 써주셨어.

비비에잇= 심지어 동아리 활동도 허위로 작성돼. 나는 전에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방송국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영상도 찍고 뮤직비디오도 만들었어. 공부를 잘 하는 학교가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내 내신 성적이 괜찮았고, 이 활동을 스펙으로 대학교에 가려고 했어. 근데 공부를 잘 하는 학교로 전학 가니까, 거긴 동아리 활동이 없는 거야. 동아리 이름은 있는데, 실체가 없는 ‘유령 동아리’뿐이었어. 학교 홈페이지에는 경제학 동아리, 영자신문 동아리, 방송국도 있었거든. 근데 막상 방송국 동아리에 들어가니까 영상 관련 활동은 없고, 학교 관련 방송만 가끔 송출하더라. 공부해야 된다고 교내 방송도 잘 안 했어. 공부 외에는 할 게 없었어.

 ◇입시 교육의 최대 폐해 ‘줄 세우기’ 

비비에잇=같은 공간에 있어도 성적이 좋은 학생과 안 좋은 학생이 경험하는 교실은 완전히 달라. 나는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양쪽을 다 경험해봤거든. 성적이 좋을 때는 학교에서 인정받고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 줄 알았어. 담임이 아닌 선생님들까지 항상 나를 신경 써주고, 내 미래에 관해서 좋은 얘길 많이 해줬거든. 근데 성적이 떨어지니 공부 잘하는 애들의 들러리가 되더라. 선생님은 내 의견을 들어주지 않고 무시했어. 잘못한 것이 없을 때도 자주 의심받고 부모님을 비난하기도 했어. 학생의 성적이 얼마나 좋은지, 대학은 어디에 갈 것 같은지가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

카페인= 선생님이 학생을 학업 성적으로 대하면 학생은 자연스럽게 ‘성적 지상주의’를 학습해. 영화 ‘위플래시’에서도 선생님이 학생을 최고로 만들겠다면서 광적으로 다그치며 훈련시키잖아.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의 말투와 행동이 딱 그 사람 같았어. 아침 자습 시간에 5분만 지각해도 벌을 세우는가 하면 성적 떨어졌다고 대놓고 면박을 주시더라. 또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만 포트폴리오, 동아리 활동을 챙겨주셨어. 면담 기회도 성적이 좋을수록 많았고. 성적 낮은 학생은 아예 관심 밖인 거지. “공부를 잘 해야 사람 대접 받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오기에 차서 공부하게 되더라.

표정부자= 선생님은 학생들을 계급화 하고, 학생들은 거기에 맞춰서 공부하고 생활해.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너한테는 미래가 없다”는 식으로 대하잖아. “넌 아무것도 아니다.” 낮은 성적에 맞춰 나의 존재 가치도 함께 깎이고, 결국 내가 부정을 당하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내가 꿈이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되더라. 근데 그렇다고 성적이 좋은 친구가 행복한 것도 아니야. 성적 떨어지면 안 된다면서 다른 애랑 비교하고, 더 올리라고 스트레스 주고. 학교가 성적에 과잉으로 몰입하니, 졸업 후 대학교에 가서도 학생들이 점수로 자존감을 채우게 되는 것 같아. 대학교에 입학하니까 학생들이 서로의 수능 점수가 몇 점인지, 몇 개 틀렸는지 묻더라.

비비에잇= 학생들을 성적으로 차별하는 행태가 너무 당연시되고 있어. 우리 학교는 야간 자습실도 성적으로 A반, B반, C반을 나눴어. 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떨어지면 그 방에 있는 자리를 치우고 짐을 옮겨 낮은 반으로 이사가야 되는 거야. 학생들이 시험 성적 발표를 앞두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야. 근데 더 서러운 건 점수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공부 환경도 차별 받는다는 거야. 내가 C반에 있던 적이 있는데, 공부할 때 너무 추운 거야. 펜을 쥘 수 없을 정도로 추웠어. 근데 잠깐 B반에 가봤더니 거기는 난방도 틀고 너무 따뜻한 거야. “내가 B반에서 공부했다면 따뜻하게 공부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서러웠어. 근데 야간 자율학습을 내 마음대로 빼지도 못해. 빠지면 엎드려 뻗쳐 시키고 허벅지에 피멍이 들도록 맞았거든. 당시에는 학교가 너무 끔찍해서 아이를 낳으면 학교 안 보내고 홈스쿨링 할까 고민도 했어.

카페인=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성적 관리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배경엔 교사 역시 평가 대상인 탓이 커. 서울 4년제 대학 진학률, 특히 서울대 합격자 수가 교사 그리고 그 학교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잖아. 결국 성적을 제일로 여기는 사회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악순환은 반복될 거야. 우선 매년 공개되는 고등학교의 ‘대입 성적표’를 공개하지 않는 것 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

 ◇학교 교육, 어떻게 변화돼야 할까 

표정부자= 문ㆍ이과를 내신과 수능에 따라 선택하는 것부터 고쳐야 해. 외고를 다녔지만 1학년 때 물리 과목에서 100점을 맞곤 해서, 문과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어.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내가 어떤 과목을 잘 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지, 장래희망에는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등을 고민할 여유가 없잖아. 학교는 단순히 수학 점수가 높으면 이과에, 국어 점수가 높으면 문과에 가라고 하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갑자기 나눠진 문ㆍ이과로 대학이 나뉘고 직업도 나뉜다는 것. 각 분야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한정돼있고 그 중에서도 좋은 직업으로 평가되는 것들은 제한적이야. 문과에서는 변호사나 외교관이 아닌 다른 직업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네가 아직 몰라서 그래”라는 답을 들었어. 다양한 관심사를 존중하고 그에 맞는 도움을 주는 교육이 됐으면 좋겠어.

강냉이= 초ㆍ중ㆍ고등학교 교육 풍경은 항상 모두가 똑같이 앞만 보고 있는 것이었어. 이제는 학생들이 마주보는 풍경이 됐으면 좋겠어. 나와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 1년 동안 같은 교실에 있으면서도 대화 한 번 안 나눠본 친구도 있었어.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수업을 들으며 다른 친구들이랑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예체능 수업시간이 거의 유일했던 것 같아. 근데 학년이 올라가며 예체능 수업도 점점 없어졌어. 학생들이 함께 떠드는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

카페인= 우리는 학교에서 내 옆에 있는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배워. 한국 학생들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거의 없었거든. 시험 기간만 되면 잘 놀던 친구들과도 감정 싸움을 해야 했어. 그 경쟁 의식이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서도 계속 이어져. 동료애가 생길 수 없는 환경인 거야. 한국 교육이 학생들의 공감 능력과 사회성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려면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교육이 아닌 남과 어우러지는 교육이 이뤄져야겠지.

판다= 학생들에게 사회에 나가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 내가 학생이었을 때 누군가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아냐”고 반문하고 싶었어. 경험을 해봐야 아는 건데, 현실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냈잖아. 미지의 상태인 내 능력치와 미래가 과소평가 돼 버리는 느낌이야. 나의 10대가 그렇게 통으로 날아갔다는 게 아쉬워. 나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학교 바깥에서 경험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근데 그런 교육은 내가 죽고 나서야 될 것 같아.

비비에잇= 학교가 획일화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 세상은 아직까지 공부든 삶이든 지향하는 가치든 정상적인 것을 요구하잖아. 다양성이 결여돼 있어. 학교는 학생들에게 그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도 괜찮다는 교훈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교과서가 정상가족의 모습만 담아냈어. 학교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특정한 ‘정상성’을 강화하는 공간이었어. 그 정상 범주에 속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그리고 속해야 한다는 강박이 항상 있었어. 학교는 정상성을 재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가치를 공유하는 공간이 돼야 해.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창의성은 특수한 학생들만 모여 있을 때 커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서 협업할 때 생긴다”고 말한 적이 있어. 다양한 가치를 담아 교육 내용도, 학생들도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으면 좋겠어.

정리= 조희연 인턴기자

참여= 권현지, 김의정, 정선아, 정영인, 홍윤지 인턴기자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 하죠.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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