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핵(核)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는 가운데, 미 해군이 18일(현지시간) 이란의 무인정찰기(드론)를 격추한 사실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직접 공개했다. 앞서 이란이 지난달 20일 미군 드론을 미사일로 떨어뜨린 지 약 한 달 만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양국의 군사적 대치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이란 외무장관이 이날 ‘미국의 제재 해제 시 강화된 핵 사찰을 받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던져 외교적 해법의 실마리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 해군의 복서(Boxer)함이 1,000야드(약 914m)로 매우 근접한 이란 드론에 대해 방어 태세를 취했다”면서 “그것(드론)은 즉시 파괴됐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 수역을 항해하는 배에 대한 많은 도발적 적대 행위 중 가장 최근의 사례”라면서 미 해군의 조치는 ‘방어적’이었음을 강조했다.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지난달 20일 미군의 드론이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면서 대공 방어 미사일로 격추한 바 있다. 거의 한 달 만에 이번에는 유사한 강도로 미국이 맞대응을 한 셈이 됐다. 그러나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은 곧이어 “우리는 호르무즈를 포함해 어디에서든 드론을 잃지 않았다. 복서함이 실수로 자국 무인기를 격추시킨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미국 측 발표를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튿날 미국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이란 드론 격추의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서 “드론이 우리 선박과 지나치게 가까이 비행하면 계속 격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또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들에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할 때 자국 선박을 보호하고, 미국과 공조하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근 이 지역에서 유조선 피격 사건이 잇따르자 민간 선박 보호를 위한 ‘호위 연합체’를 추진, 관련국에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 IRGC가 석유 밀수 혐의로 외국 유조선 한 척을 호르무즈 해협에서 지난 14일 억류한 사실을 발표하자, 미 국무부는 “안전한 항행을 방해하는 것을 강력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호위 연합체에 대해 ‘이란에 대한 군사적 연합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으나, 이란은 “미국은 페르시아만 진입 때마다 지옥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양국의 군사적 마찰음이 커지고 있지만, 같은 날 미국을 찾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의 ‘제재 해제’와 이란의 ‘핵 사찰 강화 수용’을 맞바꾸는 새로운 협상안을 미국 측에 제시했다.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자는 유화 제스처를 던진 셈이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자리프 장관은 이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가적인 것을 원한다면, 우리는 ‘추가의정서’를 비준할 수 있다”면서 “이는 상당한 조치”라고 자평했다. ‘추가의정서’는 이란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사찰 권한을 확대해 주는 것을 뜻한다.
또한 자리프 장관은 지난해 미국이 이란 핵 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할 당시 문제 삼았던 ‘일몰조항(2030년 핵 프로그램 개발 제한의 자동 해제)’을 대신해서 “영구적으로 강화된 조사를 받겠다”고도 제안했다. 이에 대해 JCPOA 체결에 참여했던 웬디 셔먼 전 미 국무차관은 “이란 의회가 ‘추가의정서’를 승인한다는 제안은 엄청난 것”이라며 “이란도 상당한 대가를 원하겠지만, 어쨌든 창의적인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 개발뿐 아니라 대외 정책도 문제 삼고 있어, 자리프 장관의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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