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초’
5시간 가까이 이어진 ‘물 위의 마라톤’ 오픈워터 25km 남자부에서 1위와 2위를 가른 시간은 단 1초도 되지 않았다. 승자만을 기억하는 것이 냉혹한 스포츠의 세계라지만, 극한의 피로를 이겨내고 결승선을 통과한 그 순간만큼은 누가 1등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한 끗 차이로 금메달을 딴 선수도, 아쉽게 우승을 놓친 선수도 서로를 꼭 껴안아줄 뿐이었다.
‘프랑스의 철인’ 악셀 레몽(25)이 19일 전남 여수 엑스포해양공원 오픈워터 수영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오픈워터 남자 25km 경기에서 4시간51분6초2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시51분6초50으로 2위에 오른 키릴 벨랴예프(22ㆍ러시아)와의 차이는 단 0.3초였다.
이날 선두권에서 체력을 비축하는 전략으로 경기를 펼친 양 선수는 결승선을 단 2km를 남겨 두고 스퍼트를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듯 레몽과 벨랴예프는 나란히 역영하며 거의 동시에 터치 패드를 찍었다. 정확한 판정을 위해 비디오 판독을 기다리는 사이, 두 선수는 힘든 여정을 함께 한 전우처럼 악수를 나눴다. 결국 레몽이 간 발의 차로 손을 먼저 패드를 찍은 것이 확인되며 희비가 갈렸다. 레몽은 경기 후 프랑스 레퀴프와의 인터뷰에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을 정도의 힘든 상황이었다”며 “터치 패드에 어떻게 손이 닿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머리는 생각하기를 멈춘 데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단지 행복할 뿐”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레몽을 비롯해 이날 오픈워터 남녀 25km에 참가한 45명의 선수 중 38명이 악천후라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완주에 성공했다. 남해안을 향해 북상 중인 5호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후반 레이스 들어 굵어진 빗방울과 바람에 선수들의 역영이 위태롭게 보일 정도였지만 평소 훈련으로 단련된 선수들의 열정을 막아내진 못했다.
여자부에서는 앞선 오픈워터 5km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던 아나 마르셀라 쿤하(27ㆍ브라질)가 5시간8분3초의 기록으로 터치 패드를 가장 먼저 찍어 대회 2관왕에 올랐다. 2위 피니아 분람(24ㆍ독일ㆍ5시간8분11초60)과 3위 라라 그랑종(28ㆍ프랑스ㆍ5시간8분21초20)을 여유롭게 따돌린 멋진 역영이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분람과 포옹을 나눈 쿤하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며 “보통 경기가 5시간 25분 정도 소요되지만 오늘은 5시간 10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모든 선수들이 강했다”고 경쟁자들을 치켜세웠다. 쿤하의 말처럼, 이날 선두에 50분 가까이 뒤쳐져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남자부 최하위 막시밀리아노 파코(우루과이), 여자부 최하위 팡 쿠(중국)도 패자가 아닌 승자로 박수 받았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주소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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