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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조명팀장으로 일하는 A씨. A씨는 외주제작사와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맺고 일해왔다. 서류상 근로자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제작사의 업무를 수주 받아 일했다는 의미다. 동시에 A씨는 4~5명의 소속 팀원과 다시 업무위탁(프리랜서)계약을 맺어 해당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일했다. 이렇다 보니 A씨는 물론 일반 스태프들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불법적인 연장근로나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A씨는 “출퇴근 시간부터 밥 먹는 시간까지 모두 제작사와 연출의 지시를 받는데 프리랜서라고 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제작 스태프들을 근로자로서 인정하고 제작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근로 환경 개선에 나서는 게 A씨의 바람이다.

하지만 지난 17일 고용노동부는 드라마 제작 현장 근로감독결과를 발표하면서 “팀장 스태프의 지시를 받는 일반 스태프들은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어도,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팀장들은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욱이 일반 스태프들이 팀장급의 지휘ㆍ감독을 받기 때문에 이 둘은 사용종속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팀장급 스태프가 팀원에게는 일종의 사용자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민주노총 서울지부 산하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 지부는 고용부의 해석에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팀장급 스태프들도 독자적 업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제작사와 연출의 스케줄에 따라 지시를 받아 일하는 근로자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팀장급 스태프와 팀원들 간 사용종속 관계를 인정하는 순간 ‘진짜 사용자’인 외주제작사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고 비판했다. 불법연장근로 등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의무가 있는 외주제작사가 그 책임을 팀장급 스태프에게 전가하게 될 거란 우려다.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 지부장은 19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매번 촬영지가 옮겨질 때마다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으로 몇 시에 어느 장소에서 몇 신을 찍는다는 게 공지되면, 동시녹음ㆍ조명 등 각 팀이 공지에 따라 이동을 한다. 팀장이 ‘우린 한 시간 쉬고 가겠다’며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휴식 일정을 정할 자율권도 없는 팀장급 스태프가 어떻게 일반 팀원과의 사용종속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냐는 주장이다. 팀장들이 기술적인 세부업무 방향을 정할 수는 있겠지만 근로 환경과 직결되는 촬영 일정 등은 모두 제작사의 결정에 따른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 근로환경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말에도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 제작 스태프들이 열흘간 연속촬영으로 20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며 SBS와 제작사를 고용노동청에 고발 하기도 했다.

물론 최근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상파 방송3사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언론노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 지부 등이 모여 표준근로계약서 작성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도 했다. 이들은 9월말에는 최종 협의문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급 스태프가 팀원과 사용종속성을 갖지 않고 제작사 지시에 따라 일하는 근로자라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현실에선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근로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 지부장은 “외주제작사들이 팀장급 스태프에게 팀원과 표준근로계약서에 준하는 계약서를 쓰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빈 틈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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