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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청구권’ 소멸되진 않았지만 인정은 못한다? 징용 배상 막아선 일본의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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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청구권’ 소멸되진 않았지만 인정은 못한다? 징용 배상 막아선 일본의 궤변

입력
2019.07.20 04:40
수정
2019.07.20 09:1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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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록에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외교 보호권’ 포기됐지만 개인 청구권과는 무관”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후나바시=AP 연합뉴스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후나바시=AP 연합뉴스

일제 강점기에 징용, 징병, 정신대 등으로 강제동원된 피해자 수는 국내외를 포함해 최대 780만여명(중복 동원인원 포함)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753만 노동자들은 국민징용, 관 알선, 도내 동원의 방법으로 탄광, 군수공장 등에 끌려가 혹사당했다. 아예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에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극도의 처참한 환경에서 일을 시키려고 노동자 대거 동원한 것은 협약 위반”이라면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미루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과거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1910년 ‘한국병합조약’에 따른 식민지배가 정당하기 때문에 국가총동원법 등에 따라 자국 국민을 전시 동원한 것 또한 적법하다는 논리다. 1953년 한일회담에 나온 일본 측 대표 구보타 간이치로가 “일본의 조선 통치는 조선인에게 은혜를 베푼 면이 있다”고 한 망언에서 일본의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 배상을 거부하며 내세우는 또 다른 중요한 명분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청구권협정 2조에 “양국 및 국민간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을 근거로 강제징용 문제도 해결됐다는 게 일본 주장이다. 이를 토대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며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국제사회의 국제법 상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등의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의 주장에 따르면 강제징용 손해배상 문제는 결국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청구권협정의 범위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와 관련 지난해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징용 피해배상을 거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은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은 물론이고, 전범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한 개인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서 여전히 살아있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또한 “청구권협정은 채권ㆍ채무관계 해결을 위한 것이며,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전후 처리 일지. 김경진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 전후 처리 일지. 김경진 기자

일본도 사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은 남아있다는 입장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보호권(국가가 나서 외국 정부를 상대로 개인들의 피해를 챙겨줄 권리)’이 소멸했다는 이유로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발끈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나 다름없다. 1965년 당시 일본 외무성 내부문서에는 “청구권협정 2조는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이라면서 개인 청구권과는 무관하다는 내용이 담겼고, 1991년 야나이 순지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지난해 고노 다로 일본 외상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대법원 별개의견은 “청구권협정에서 외교보호권이 포기됐더라도 한국이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할 뿐, 국가와 별개의 법적 주체인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으므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국내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본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사법권은 국가주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판결도 아니고 국내에 들어온 외국 기업을 상대로 한 민사 판결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문제 삼아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거론하고 있지만 이 또한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ICJ 규정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동의 없이는 ICJ 재판 절차가 아예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결국 수출규제 등 강대강 대치 만이 남은 셈이다. 정부로서는 청구권협정으로 만들어진 65년 한일체제의 재정립을 위해 일본 정부를 설득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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