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왔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전국에서처음 어르신 공로수당(월 10만원) 지급하고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구의회 의장을 고발한 사실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이는 그의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3년간 국회의원 보좌관과 청와대 행정관 등 정무직에만 있다 행정을 처음 맡는 그는 주변의 각종 비판에도 불구하고 매일 중구 구석구석을 지나며 걸어서 출근할 정도로 열정이 넘쳐났다.
“구청장 되기 전 구를 100바퀴 돌았던 초심으로 돌아가 주민들과 소통하겠다”는 그는 어르신 공로수당에 대해 “노인이 가장 빈곤한 중구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기초정부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교육 4종세트’를 통해 영ㆍ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맞춤형 보육ㆍ교육을 지원해 중구를 떠나는 주민들을 붙잡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어르신 공로수당과 교육 4종세트 사업은 중구가 올해 각각 150억원씩을 투입한 핵심 전략사업이다.
-어르신 공로수당이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지금도 기초단체장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추진 배경은 뭔가.
“중구는 서울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서울시 평균 13.5%, 중구는 17.3%). 독거노인과 85세 이상 노인들의 빈곤율도 서울에서 1위다. 이유는 전통시장이 37개로 가장 많아서다. 점포주, 지주들은 주로 강남에 살지만 노점을 하거나 좌판에 종사하는 분들은 대부분 시장 주변 허름한 곳에 산다. 노인을 위한 과감한 복지정책을 최우선으로 할 필요성이 높다. 서울에서 국회의원을 한 명도 독자적으로 배출하지 못하는 작은 구(인구 12만5,000명)의 존립을 지켜내는 측면도 있다.”
-어르신수당에 대해 ‘중구의 여력이 돼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쪽과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으로 견해가 갈리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르신수당은 지자체가 선도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거다. 아동수당, 무상급식도 마찬가지였다. 지자체가 제기하면 국가가 수용해 복지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어르신수당은 중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다른 지자체를 향해 따라오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중구는 정부와 복지당국을 대상으로 노인 복지 확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중구도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 어렵사리 150억원을 투입했다. 국가도 재정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지금 복지는 관행적인 토건사업에 밀려 후순위로 내려앉아 있다.”
-어르신수당이 현금복지라는 비판이 있는데.
“현금복지는 옳지 않는 프레임이다. 시설 투자든, 건물 매입이든 구청 예산을 어음으로 투입하는게 어디 있나.(웃음) 복지만 현금성이라는 건 복지가 지출이고, 소비이고, 포퓰리즘이라는 복지 반대주의자들이 만든 프레임이다. 복지 증액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반영된 거다.”
-‘교육 4종세트‘를 발표할 정도로 교육에 대한 관심도 큰데, 이 역시 인구감소 억제 정책의 일환인가.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로 진학할 때 학생 수가 18%나 감소한다. 대안으로 영ㆍ유아부터 초중고까지 교육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른바 ‘교육 4종세트’를 마련했다.
첫째가 국공립 어린이집의 구 직영화로, 신당동어린이집 등 3곳은 이미 전환했다. 하반기에 2곳을 추가하는 등 임기 내 24개 중 18개 국공립어린이집 직영을 목표로 한다. 다음은 초등학생 방과 후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시작한 구 직영 돌봄교실이다. 3월 흥인초등학교를 필두로 올 하반기에는 봉래초등학교, 내년에는 지역 공립초등학교 9곳 전체로 돌봄 교실을 확대한다. 중고등학생 진학과 진로 탐색을 위한 구 직영 진학상담센터도 있다. 굳이 강남까지 가지 않아도 입시 전문 컨설턴트에게 진학ㆍ진로 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 직영 방과후 진로체험 원스톱 버스가 있다. 관내에 매출 1조원이 넘는 36개 기업과 각종 시설을 진로 체험처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을지로 재개발 관련해 노포들이 사라질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기업화돼 있는데 보존하면서까지 개발을 못 할 이유는 없다라는 반론도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재생 도시인 빌바오의 사례를 봤더니 도시의 유물을 무작정 남기는 게 아니더라.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 20%만 재생하고 나머지 80%는 철거한다는 거다. 즉 개발은 악이고, 보존은 선이라는 이분법을 깨뜨린 신선한 발상이 돋보였다. 도시란 스토리가 생생하고 안전이 담보되는 것이 중요하다. 을지면옥은 건축학적으로 보존 가치가 없고 안전이 위협받을 정도로 노후화돼 있다. 맛과 분위기 등 무형의 가치를 보존해주는 게 맞다.”
-주민들에게 예산 권한을 위임하는 동정부란 개념을 도입했던데.
“각 기초단체들이 지방분권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가진 권한을 하급 관청으로 넘기는 데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구는 시와 동 사이에 걸터앉아 동을 관리하는 구조이지만, 하수도 문제, 주차 관리 등 일상적 생활 문제는 동이 책임지는 게 더 효율적이다. 이에 구청 권한 70개를 동으로 보냈다. 올해 예산편성 추경안에 한 동당 5억원씩 75억원, 내년에는 150억원 정도로 해서 임기 동안 각 동당 35억원씩, 500억 정도를 배분할 것이다. 구민이 필요한 공공 서비스는 동장 권한 하에 운영되도록 하는 게 동정부의 핵심이다.”
-을지로에 공구ㆍ조명ㆍ섬유패션 등 다양한 영세 사업체들이 많은데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기계ㆍ공구ㆍ정밀 업체가 몰려 있는 을지로 3구역은 연말까지 개발이 보류된 상태다. 공구는 제조업이 아닌 유통업이어서 주상복합건물에 같이 있어도 된다는 생각이다. 서울시가 협의해서 푼다고 하니까 3구역은 당장의 급한 불은 아니다. 6구역인 인쇄구역에 비슷한 문제가 닥친다. 서울에 있는 7,800여 개 인쇄업체 중 67%인 5,200여개가 중구에 자리 잡고 있다. 쇠퇴해 가는 영세 인쇄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을지로 일대 공공부지에 '서울 메이커스 파크(SMP)'라고 하는 도심산업 집적지를 만들려고 한다. 이곳에 주거·산업·문화 복합시설을 만들어 저렴한 임대료로 일부 인쇄업체를 입주시켜 순환재생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고자 한다.
섬유·패션·봉제 산업 활성화와 관련해 지난 5월 동화동에 영세 봉제인들을 위한 공용재단실을 마련했다. 자동 재단에 필요한 자동연단기 등 고가의 장비를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토록 했다. 공용재단실을 발판으로 향후 신당권역 일대 봉제업과 동대문패션타운을 연결하는 앵커시설로서 '신당메이커스파크' 건립도 구상 중에 있다.
-취임 1년 소감은.
“현장을 다녀보니까 주민들은 쓰레기ㆍ주차 등 일상적 도시 관리를 잘 해 주기를 바랐다. 일상적 문제를 해결해야 소통과 신뢰가 생기고 어르신수당 등 전략과제를 추진할 힘이 생긴다. 초심으로 돌아가 주민들과 소통에 더 노력하겠다.”
진행=한창만 지역사회부장
정리=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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