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일 미국 텍사스주 킬린시 소재 포트후드 육군기지에서 이라크전 참전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어온 이반 로페즈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동료 3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2012년에는 역시 참전 군인인 벤저민 컬턴 반스의 총기난사로 4명이 다친 사건도 있었다. 이라크전 후 미국에서는 PTSD로 고통 받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한 참전 군인들의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참전 미군 장병의 3분의 1이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미 보훈부의 연구결과도 있다.
장편소설 ‘카시지’는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이라크전 참전용사를 통해, 전쟁의 폭력이 한 인간과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들여다 본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2014년 작품이다. 인간 영혼의 어둠을 탐색하고 삶을 허무는 세상의 폭력을 그려온 작가의 세계관이 집약된 대작으로, 국내 초역이다.
소설은 크레시다라는 소녀의 실종에서 시작된다. 아름다운 언니와 법조인 출신의 전 시장인 아버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똑똑한 딸 크레시다는 뉴욕주 북부 카시지의 산림보호구역에서 사라진다. 크레시다가 마지막으로 목격됐을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은 크레시다 언니의 전 약혼자이자 이라크전 참전 용사인 브렛. 여기에 브렛의 차량에서 크레시다의 지문과 혈흔, 머리카락이 발견되면서 실종사건은 살인사건으로 전환되고 브렛은 처제가 될 뻔했던 소녀의 가장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다.
신실한 기독교인이자 선량한 청년이었던 브렛은 조국에 이바지 한다는 믿음 하에 전쟁터로 향했다. 그러나 브렛이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 무자비한 동료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죽이고 정리는 신에게 맡겨라”는 지시였다. 학살을 합리화하는 것은 “미국은 정의로운 국가이며,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정언명령이다. 전쟁터의 비인간적 행태를 목격하고 돌아온 브렛은 더 이상 과거의 브렛이 아니다. 끊임없이 전쟁 당시의 끔찍한 잔상에 시달리던 브렛은 일곱 시간의 심문 끝에 크레시다를 살인했다고 자백하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그에게 15년형을 선고한다.
크레시다의 실종과, 상실로 절망하고 분열하는 가족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브렛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소설은 1부를 끝맺는다. 2부에서는 사회공공기관의 부패와 비리를 취재하는 대학교수와 조수를 등장시켜 미국의 사형제도와 형사사건 재심제도인 ‘이노센트 프로젝트’를 다룬다. 1992년 미국 뉴욕의 한 로스쿨에서 시작된 이노센트 프로젝트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강요에 의해 허위 자백을 하고 수감된 이들에게 자유를 안겨줬다. 이노센트 프로젝트 덕분에 무죄로 풀려난 이들만 365명에 달하고, 이 중에는 20여명의 사형수도 포함돼 있었다.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개의 서사지만, 2부의 주요인물로 7년 전 브렛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간주됐던 크레시다가 등장하면서 소설은 급물살을 탄다. 여기에 크레시다가 실종된 날 밤의 전말이 드러나면서 독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든다. 살해 당한 것으로 여겨졌던 ‘피해자’는 멀쩡히 살아있고, ‘가해자’는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죗값을 치르고 있다면? 오츠는 모호한 도덕적 풍경 속에서 과연 누가 진정한 피해자이고 가해자이며, 선과 악을 완벽하게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러한 모호함 속에서 단죄는 어떻게 가능한지 묻는다.
8년 9개월 간의 이라크 전쟁 동안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스러졌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무수한 민간인의 목숨을 뺏은 약탈자이기도 했다.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미군 4,400명이 사망했고, 이라크 민간인은 적게는 11만 6,000명에서 많게는 18만 9,000명이 사망했다. 악을 처벌하기 위해 악을 저지르는 전쟁은 그 무엇보다 선과 악, 가해자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곳이다. 오츠는 소녀의 실종과 살인이라는 고전적 스릴러의 얼개를 가져와 전쟁의 참혹함, 죄와 벌에 대해 이토록 뼈아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카시지
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ㆍ공경희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684쪽ㆍ1만 8,5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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