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실용을 결합하지 못하고 필요할 때 타협하지 못하는 무능이 우리의 모든 정치적 담론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이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비하하지 않고 비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정치엔 승자와 패자가 없습니다.”
퇴임(23일)을 눈앞에 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총리로서 마지막 대중 연설에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나이절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 등 이른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절대주의자’를 겨냥한 메시지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17일(현지시간)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채텀하우스 연설에서 “타협은 결코 더러운 말이 아니다”라면서 “정치인들은 시급한 국제적 과제들에 대한 공통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BBC 방송은 메이 총리의 이번 연설이 최근 미국 민주당 내 유색 여성 하원의원에 대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이어 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라고도 해석했다. 메이 총리는 연설 도중 “절대주의는 영국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유럽을 넘어 극좌와 극우 정당의 등장을 보고 있고 국제 관계에서도 점점 더 적대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외에서 이 절대주의는 최선의 정치와 반대”라고 힘주어 말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2016년 7월 총리에 취임했다.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영국이 맞이한 두 번째 여성 총리였다. 영국이 유럽과 다른 독자적 길을 걸어가는 갈림길에서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펼쳤으나 유럽연합(EU)과의 탈퇴 협상 동력을 얻기 위한 무리한 조기 총선 시도가 발목을 잡았다. 2017년 6월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은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에서도 무성의한 태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메이 총리를 대체할 보수당 내 인사의 기근으로 총리직을 3년여간 수행해 왔지만 브렉시트가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협상 과정에서 EU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지적이 속출했고 2018년 12월에는 보수당 내부에서 대표 불신임 투표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하지만 2019년 1월에는 메이 총리가 제시한 브렉시트 안건이 영국 현대 정치 사상 최다 표차인 230표차로 부결되면서 사실상 정치적 생명이 끝난 채 총리직을 유지해 왔다. 21세기 영국의 최대 위기를 겪어온 메이 총리의 마지막 연설은 지난 3년 동안 이루지 못한 ‘타협’에 방점이 찍혔다.
하지만 영국 일각에선 메이 총리의 마지막 연설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의회 담당 기자 마이클 디콘은 이날 텔레그래프 온라인판에 실린 ‘테리사 메이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나쁜 연설을 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는 “철저하게 뉴스가 없는 연설을 해 오후를 낭비하게 했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2016년 예상외로 가결된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사임하며 졸지에 총리 자리에 오른 메이 총리가 마지막까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편, 영국 총리로 선출(23일)될 것이 유력한 존슨 전 장관이 지난 1년 동안 약 70만2,000파운드(약 10억3,000만원)의 정치 지원금을 모금해 역대 영국 정치 모금액 중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이날 영국 의회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존슨 전 장관은 보수당 대표 경선이 시작된 5월 이후 약 54만8,000파운드를 모금했다. 최근 2주간의 모금액만 20만파운드에 달한다고 FT는 덧붙였다. 경쟁자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은 5월 이후 약 18만7,000파운드를 모금한 것으로 추정된다. 존슨 전 장관과 헌트 장관은 메이 총리가 마지막 연설에 나선 같은 날 런던 엑셀 센터에 모인 보수당원 2,000명 앞에서 토론회를 가졌다. 16만명에 달하는 전체 보수당원의 투표를 앞두고 열린 마지막 토론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