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전 의원은 보수의 품격을 보여준 중도와 포용의 정치인이었다. 17일 오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한 조문객이 오열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미국 시카고 변호사 호레시오 스패포드는 1873년 가족과 함께 여객선을 타고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다. 마침 일이 생겨 다음 배로 합류하기로 하고 부인과 딸 넷을 먼저 보냈다. 가족을 태운 여객선이 대서양을 건너던 중 다른 배와 충돌해 12분 만에 가라앉았다. 아내는 극적으로 구조됐으나 네 딸을 포함해 226명이 희생됐다. 서둘러 영국에 있던 아내에게로 향하던 스패포드는 사고 해역을 지나면서 눈물로 글을 썼다.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이 탄생한 배경이다.

□ 의류 수출업체 현진어패럴은 이상철(72) 대표가 두 딸 현아, 진아의 앞 글자를 따 만들었다. 이 대표는 2003년 미국 연수 중이던 진아(당시 23세)씨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책을 유난히 좋아하던 딸을 기리는 도서관을 짓는데 50억원을 내놓았다. 조건은 딸 이름을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건립된 ‘이진아기념도서관’이다. 작은 동네 도서관이지만 서울 전역에서 매년 60만명 넘게 방문할 정도로 유명하다. 여느 도서관과 달리 시험공부용 열람실이 없는 대신 인문학교실, 도예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이 대표는 딸이 숨진 이듬해, 경기고 후배인 정두언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찾아가 도서관 기증 의사를 밝혔다. 정 부시장은 인왕산이 내려다 보이는 지금 자리에 도서관이 세워질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 국회의원 시절인 2015년 9월에는 개관 10주년을 맞은 도서관을 찾아 이 대표 부부 앞에서 축가를 불렀다. 네 장의 앨범을 내 ‘가수’로 불린 정 의원이 고른 노래는 ‘내 평생에 가는 길’. 이 대표는 노래를 끝낸 정 의원을 꼭 껴안았고, 그의 부인은 가만히 눈시울을 붉혔다.

□ 정두언 전 의원은 권력의 사유화를 경계했던 합리적 보수주의자다. 선해 보이던 공무원이 정치를 하며 몸도 마음도 급속히 망가졌다. 그는 한 문예지에 기고한 글에서 “정치라는 거칠디 거친 직업 때문에 많이 상하고 나빠졌다”고 고백했다. 그와 친했던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우울증은) 정치를 하며 숙명처럼 지니는 것”이라 했다. 그는 19일 한 공원묘지에 묻힌다. 정치를 하며 쌓인 분노와 증오를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길 기원한다. ‘내 평생에 가는 길이 늘 잔잔한 강과 같이 순탄하든지, 아니면 큰 풍파로 인해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주 안에서 늘 편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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