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도 종종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시계 초침 소리에 잠을 자지 못한다. 그래서 잠자는 방은 물론 일하는 공간에도 아날로그 시계를 두지 않는다. 한밤중 누워 잠들려고 할 때나, 마감은 급한데 이상한 불안으로 오히려 일에 몰입하지 못할 때 울리는 ‘짜각짜각’, 시계 초침 소리는 지구를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처럼 들린다. 끝없이 한 걸음씩 다가오면서도 결코 내게 닿지는 않은 채 영원히 계속되는, 무한 반복의 되돌이표 같기도 하다. 그 소리의 무한궤도에 포위되면 빠져나올 방법은 없다. 소리를 없애는 수밖에는.

요즘은 디지털 시계나, 초침이 움직여도 소리가 나지 않는 무소음 아날로그 시계도 많고,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벽시계 자체가 자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예전엔 낯선 공간에서 잠을 청할 때 들리는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정말로 곤욕이었다. 벽시계가 높은 곳에 걸려있을라치면 의자를 놓고 낑낑거리며 시계를 떼어낸 후 건전지를 빼내곤 했다. 다음날, 건전지만 다시 끼워놓고 벽에 다시 걸어두지 않은 채 도망친 아침은 나의 쓸모없는 예민함에 무책임과 게으름이 더해진, 소소한 악행의 목록이다.

이 시의 화자도 초침 소리에 잠 못 든다. 시계 초침이 한밤중 혼자 깨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초침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니까. 그런데 화자는 초침 소리를 ‘찰방찰방’ 시냇물을 건너는 소리로 듣는다. 시계 중심에 고정된 얇은 금속판이 움직이며 시, 분, 초의 시간 중 가장 짧은 시간을 만들어내는 소리는 정말로 ‘찰방찰방’에 가깝지 않나. 출렁거리며 종아리와 허벅지를 넘어 올 만큼 깊은 강물이 아니라 발목이 잠길 듯 말 듯한 얕은 시냇물을 건너는 소리.

한밤중 시냇물은 어린 아이들이 물장난하며 더위를 식히는 한낮의 시냇물과 다르다. ‘복숭아뼈’라는 명사로 처연하게 시리고 ‘선득’이라는 부사로 순간 서늘해진다. 한밤중 홀로 깨어 맨발로 차가운 시내를 건너는 화자. 무한 반복되는 시계 초침 소리에 갇혀 아침이 올 때까지 계속 걸어야 할 밤길이다.

불면의 밤길은 죽음의 시간인가.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화장실과 다용도실 사이/좁다란 벽에/시계가 걸렸다.//재깍 재깍 재깍 재깍……/벽은 새로/숨을 얻었다.//두근 두근 두근 두근……/고른 숨소리./살아난 벽.//”(‘벽’ 전문) 초침 소리는 살아 숨을 쉬는 소리이기도 하다. 밤을 지나 낮이 오고, 낮을 지나 밤은 또 온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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